강주인(江主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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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강 주변에 거주하며 선인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상품 거래를 중개하면서 그 대가를 받았던 중간상인.

개설

강주인은 주인(主人)층 가운데 한강 일대의 경강(京江) 주변에 살면서 선인(船人)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선인의 상품을 지켜 주며 상품의 거래를 중개하던 중간상인이었다. 강주인은 선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초기의 강주인은 선인에게 적은 금액의 수수료를 받아 생활하였다. 그러나 점차 강주인을 통한 무역이 일반화되어 강주인과 선인의 관계는 지배-예속 관계로 변하였다. 강주인은 조선후기 여객주인(旅客主人)의 전신(前身)이다.

내용 및 특징

조선전기의 주인층은 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경주인(京主人)과 사적으로 영업하는 사주인(私主人)으로 구분되었다. 공물 방납이 성행했던 시기에 성장한 사주인은 대동법의 실시와 더불어 점차 쇠퇴하였다. 이들이 담당하였던 기능들은 조선후기의 공물주인(貢物主人), 세곡주인(稅穀主人), 강주인, 여객주인 등으로 분화되어 갔다.

주인 영업은 처음부터 세곡주인, 강주인, 여객주인 등으로 구분되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기능이 분화되기 이전에는 선인이나 선상(船商)을 접대하는 것이 주된 영업이었다는 점에서, 주인이 접대하는 대상에 따라 명칭이 정해지기보다는 영업이 행해지는 장소에 따라 경강주인, 강주인, 포구주인, 진주인(津主人) 등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포구 상업이 발달하면서 한강 일대의 경강을 오가는 선인들이 세곡 운송 선인, 일반 선박의 사공·격군(格軍)·선상·여객상고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그리고 주인이 이들 가운데 한 집단만 접대함으로써 주인 영업도 분화되어 갔다. 강주인은 선척의 주인이었고, 여객주인은 여객상고의 주인으로, 엄밀히 따지면 다른 영업체였기 때문에 주인권을 팔 때에도 여객주인과 강주인 역을 따로 명시하였다.

강주인이 성립하게 된 계기는 광해군대 여러 궁가나 재상가의 침학을 받은 조졸(漕卒)들의 부채를 대신 변제해 주고 그 대가로 강주인과 선인의 관계가 성립된 데에서 찾을 수 있다(『광해군일기』 6년 7월 6일). 주인과 선인 사이의 채권-채무 관계가 강주인 영업이 성립하는 계기였다. 개별 선인과 강주인 사이에 발생하는 주인권은 여러 궁가·재상가의 압력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관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닌 전적으로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강주인들은 경주인이나 세곡주인처럼 관권과 결탁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강주인권이 성립할 당시 강주인의 영업 내용은, 선상을 접대하고 물건을 밤낮으로 지켜 주는 한편, 판매할 물건이 있으면 상고(商賈)와 함께 파는 것이었다. 객주 영업인 숙박업, 위탁 판매업, 창고업, 보관업 등이 강주인 단계에서는 뚜렷이 분화되지 않고 한꺼번에 행해졌다. 이러한 다양한 기능 가운데에서 초기 강주인층의 기능은 선상 접대가 주였다. 혹 상품유통에 참여한다고 해도 선상 층의 자유로운 상품유통을 보조하는 데 그치는 제한적인 것이었다.

강주인층의 기능이 그런 정도에 불과했을 때 그들은 대부분 가난한 백성이었고, 신분도 낮았으며 수익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강주인이 주인 영업의 대가로 선인에게 받는 미곡은 17세기 중반에는 배 1척당 2~5석이었다. 당시 조운선의 적재 한도가 500석이었으므로, 강주인이 차지하는 몫은 운송 세곡의 1% 내외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다. 이때에는 선인에 대한 접대와 매매 중개업은 분리되었던 경우가 많았다. 강주인인 점주는 여객을 접대하는 대가로 약간의 금품을 받았을 뿐이며, 구문(口文)은 상품유통을 매개하는 거간(居間)이 차지하였다.

이때 주인과 선상의 관계는 여행객이 주막을 드나드는 것처럼 관에서 개입하지 않는 자유로운 관계였다. 초기의 강주인권은 관권과 전혀 관계없이 전적으로 선인과 주인 사이의 개별 계약을 통해 발생하였다. 특히 초기 객상-주인 관계는 객상의 필요, 즉 채무나 침학 방지라는 요인에 의해 성립되었기 때문에 매우 자유로웠다. 17세기 중엽까지는 이러한 채무-침학 방지의 필요가 없는 선상들은 굳이 주인을 정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자도 많았다.

변천

17세기 중엽, 주인과 객상 간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객상들은 전적으로 주인층에 의지하여 상품을 거래하였던 만큼, 주인이 없으면 객상들도 거래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주인을 정하지 않아도 상품을 거래할 수 있었던 이전에 비하면, 이는 상거래 관습에서 커다란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객상은 세력가의 침학이나 부채 등의 특별한 이유 없이도, 자기를 방매하여 주인을 정해야 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객상이 주인에게 일정한 대가를 받고 자기 방매함으로써 주인과 객상 간의 고정적이고 영구적인 주종 관계가 성립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형성됨으로써 주인권은 경제적 권리로 발전하였다.

선인에 대한 접대만을 담당하였던 강주인들은 상품 거래를 중개하는 거간업까지 영업 내용을 확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8세기 전반이 되면 강주인이 받는 대가가 운송량의 10%로 증가하였다. 이는 선인들에 대한 강주인의 지배권이 강화되면서 나타나는 것으로, 주인-선인의 관계도 점차 강력한 지배-예속 관계로 변하였음을 보여 주며, 강주인이 여객주인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하였다.

경강의 기능이 세곡 집하가 주된 것이었을 때는 주로 이와 관련된 세곡주인, 강주인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경강이 상품유통의 중심지로 바뀌면서 주인층의 중심도 여객주인층으로 변하여 갔다.

참고문헌

  • 고동환, 『조선 후기 서울 상업 발달사 연구』, 지식산업사, 1998.
  • 고동환, 「18·19세기 외방포구의 상품 유통 발달」, 『한국사론』 13, 1985.
  • 이병천, 「조선 후기 상품 유통과 여객주인」, 『경제사학』 6, 1983.
  • 이영호, 「19세기 은진 강경포의 상품 유통 구조」, 『한국사론』 15, 1986.
  • 이영호, 「19세기 포구 수세의 유형과 포구 유통의 성격」, 『한국학보』 41,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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