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감영(江原監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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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강원도 지방을 총괄적으로 다스리던 관아. 조선시대 강원도 지방을 총괄적으로 다스리던 관청 및 행정기구.

개설

고려초기에는 삭방도(朔方道)였으며 5도양계(五道兩界) 체제에서 삭방도와 동계(東界)로 구분되었다. 삭방도가 폐지되면서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와 동주도(東州道)로 편제되어 영동과 영서로 구분되었다. 이후 2개의 도는 각각 명호는 비록 변경되었으나 고려후기까지 지속되었다. 말기에 이르러 2개의 도가 통합되면서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가 되었으며, 이후 통합 체제로 운영되었다.

조선시대에는 8도제에서 강원도로 편제되었고, 충청도·경기도와 인접 도시들의 이관과 이속이 정리되면서 26곳의 군현을 관장하였다.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의 합성어이다. 이 때문에 원주와 강릉 지방에서 강상과 반역에 연루되는 사태가 발생하여 읍격(邑格)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강원도의 명호도 변경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본래 예맥(濊貊)의 지역인데 후에 고구려와 신라의 소유가 되었다. 고려 995년(고려 성종 14)에 10도제가 시행되면서 삭방도로 편제되었고, 화주(和州)·명주(溟州)·춘주(春州) 등의 군현이 예속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지방편제가 일단락되었다가 5도양계로 획정되면서 삭방도와 동계로 구분되었다. 1178년(고려 명종 8)에는 삭방도를 폐지하고 함경도와 강릉 일대를 연해명주도, 춘천·철원 일대를 동주도라고 했다. 1263년(고려 원종 4) 연해명주도는 강릉도, 동주도는 교주도(交州道)로 개칭하였다. 1314년(고려 충숙왕 1) 교주도를 회양도(淮陽道), 1356년(고려 공민왕 5) 강릉도를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로 개칭하였다. 이후 여러 번 명칭이 바뀌다가 1388년(고려 우왕 14) 강릉도를 삭방도에서 떼어 교주도와 합쳐서 교주강릉도라 하고 수부(首府)를 강릉에 두는 한편 평창군을 편입시켰다. 1391년(고려 공양왕 3)에는 철원·영평(永平) 등을 떼어서 경기도로 이속시키고, 강릉도로 고쳤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395년(태조 4)에 비로소 강원도라 칭했고, 강원도와 충청도·경기도 사이에 군현의 이관과 이속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1400년(정종 2) 원주의 속현이던 영춘(永春)과 충주 소관이던 영월을 땅의 경계가 일직선으로 되어 있지 않고 들쭉날쭉하다 하여 서로 교환하여 영춘을 충청도 소관으로 하고, 영월을 강원도 소관으로 하였다. 1413년(태종 13) 강원도의 가평(加平)을 경기도에 이속시키고, 경기도의 이천(伊川)을 강원도에 예속시켰다. 1434년(세종 16) 철원을 강원도에 환속시켰다. 이로써 강원감영은 부(府) 1곳, 목(牧) 1곳, 도호부(都護府) 5곳, 군(郡) 7곳, 현(縣) 12곳 등으로 26곳의 군현을 관장하게 되었다.

강원도는 관내의 거읍인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조합하여 명명되었다. 이 두 도시에서 강상 범죄가 일어나거나 반역 사건 등과 연루되어 읍격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도명 역시 변경되었다. 1667년(현종 8) 강릉에서 강상 사건이 발생하여 강원도를 원양도(原襄道)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1676년(숙종 2)에 강원도로 복호하였다. 1683년(숙종 9) 원주에 강상 사건이 발생하여 강원도를 강양도(江襄道)로 고쳤고(『숙종실록』 10년 2월 5일), 1688년(숙종 14) 양양지방이 반역 죄인의 태향(胎鄕)이라 하여 도의 명칭을 강춘도(江春道)라 하였다가 1693년(숙종 19)에 강원도로 복호하였다. 1728년(영조 4) 원주가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강춘도로 고쳤다가 1738년(영조 14)에 강원도로 복호하였다. 1782년(정조 6) 원춘도(原春道)로 명칭을 바꾸었다가(『정조실록』 6년 8월 2일), 1791년(정조 15) 강원도로 복호하였다. 이렇듯 도명의 변경은 대개 10년 정도를 경과하면서 복호되는 경향을 보인다.

조직 및 역할

조선초기에 감영은 원주에 두고 관찰사(觀察使) 1인, 도사(都事)·심약(審藥)·검률(檢律) 각 1인을 배치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파악되는 관찰사는 2품 문관직이었으며, 임기는 2년으로 도정을 총괄하면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겸임하였다. 관찰사의 예하에는 비장(裨將) 9인, 기고관(旗鼓官) 2인, 초관(哨官) 6인, 교련관(敎鍊官) 4인, 지각관(知殼官) 2인, 기패관(旗牌官) 25인, 병방군관(兵房軍官) 4인, 영장(領將) 3인, 천총(千摠) 2인, 파총(把摠) 2인, 별장(別將) 2인, 영리(營吏) 35인, 영아전(營衙前) 49인, 지인(知印) 37인을 두었다. 그리고 영노(營奴) 33명, 영비(營婢) 24명, 사령(使令) 28명, 군뢰(軍牢) 25명을 두었다.

도사는 6품 문관직으로 관찰사의 막부 종사관이며, 임기는 1년이었다. 도사의 예하에는 영리 4인, 지인 2인과 사령 8명을 두었다. 중군(中軍)은 3품 무관직으로 관찰사의 군사적 업무를 보좌하며, 임기는 2년이었다. 중군의 예하에는 군관 2인, 아전 2인, 지인 9인이며, 군뢰 18명을 두었다. 심약은 예조에서 뽑아서 파견하였으며 임기는 2년이었고, 검률은 형조에서 뽑아서 파견하였으며 임기는 2년이었다.

강원관찰사는 관내의 원주목사 1인, 강릉대도호부사 1인, 철원의 방어사 1인, 회양·양양·삼척·이천·영월 부사 각 1인, 정선·평창·평해·간성·고성·통천 군수 각 1인, 금성·울진·흡곡 현령 각 1인, 횡성·홍천·인제·양구·낭천·김화·춘천·평강·안협 현감 각 1인, 보안·은계·평릉·상운 찰방 각 1인, 삼척영장 1인, 월송만호 1인 등 32인 관원들의 직무를 지도 통제하였다.

변천

1895년(고종 32)에 23부제를 실시할 때 강원도는 2부로 나뉘었는데, 강릉과 춘천에 관찰부를 두고, 원주·평창·영월·정선의 4군을 충주부로 넘겼다. 1896년(고종 33) 13도제를 실시할 때 충주부로 넘겼던 4군은 다시 강원도로 소속되었으며, 춘천이 26개 군을 관할하는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관동읍지(關東邑誌)』
  • 『관동지(關東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원도, 『강원도사』11, 강원도사 편찬위원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