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조선(甲造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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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목재 선박을 제조하는 방법의 하나로, 판재와 판재 사이에 나무를 덧대어 붙이는 방법.

개설

조선초기 군선은 800여 척이 넘는 대규모의 선단을 이루었다. 그 덕에 고려 말부터 창궐하던 왜구 퇴치에 성공적으로 대처했고, 대마도(對馬島)를 공략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1443년(세종 25) 대마도와 평화관계에 돌입하면서 기존의 대규모 선단보다는 군선을 감축한 새로운 군선체제가 필요했다. 당시 조선의 군선은 왜구에 대처하기 위해 임시로 보강하고 건조된 것이어서 선박 규격은 물론 선형도 통일되지 않았다. 이런 불균형을 통일하기 위해 새로운 군선 제작법이 연구되었는데, 이때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 중국식 군선 제작법인 갑조선(甲造船)이었다. 갑조선은 중국 강남에서 첨저선(尖底船)을 만드는 방법으로, 외판(外板)을 접붙이는 방법으로 건조되었다. 반면 조선의 전통 방식은 외판을 단판(單板)으로 사용하는 단조선(單造船)이었다. 세종대 도입된 갑조선은 문종대에 중단되고 조선 지형에 맞는 평저선(平底船) 위주의 조선법으로 회귀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초기에 중국, 유구, 일본 등의 배는 철정(鐵釘)을 쓰고 판자에 석회를 바르고 판자를 접붙인 뒤 장기간 건조하여 20∼30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반면 조선의 배는 건조가 되지 않은 나무못을 사용하여 습기에 쉽게 상해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7∼8년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대마도 정벌 시 나포한 왜선을 해체하여 새로운 병선 제조에 이용하려고도 하였다(『세종실록』 13년 5월 14일). 세종대에는 갑조선법을 이용한 선박을 만들어 한강에서 시험하기도 했다. 이 배는 동자갑선(冬字甲船)으로 하체(下體)는 쇠못과 나무못을 절반씩 사용하였다(『세종실록』 16년 9월 23일). 1434년(세종 16) 전국의 군선을 갑조선 방법에 따라 건조하도록 했다. 갑조선 방법은 문종 즉위 초기인 1451년(문종 1)에도 그대로 지속되었다. 명나라의 병선이 갑조선이라는 것을 알고 그 체제를 조사하고 벌레가 먹지 않는 나무를 찾도록 했다(『문종실록』 1년 4월 18일). 또한 북경에 파견된 통사(通事)에게 선박 제조법을 조사하도록 했다(『문종실록』 1년 3월 3일).

그런데 갑조선은 유능한 기술자가 중국의 선제에 따라 정교하게 만들면 나무에 벌레가 슬지 않으며 선체가 튼튼하고 깨지지 않아 유익하였으나 기술자의 확보가 어려워 그렇게 만들지 못했다. 반면 단조선 방법은 물자가 많이 들지 않고 또한 깨진다 하더라도 보수를 가하면 수십 년을 견디어 내며 조운에도 쓸 수 있었다. 따라서 조선은 갑조선을 포기하고 단조선으로 회귀하게 되었다(『문종실록』 1년 6월 12일). 특히 문종은 갑조(甲造)의 장점은 오래 쓸 수 있다는 데에 있으나 조선 사람이 그 제작에 익숙하지 않고 단조는 일이 쉬우면서 오래 쓸 수 있다면서 갑조선을 포기하자는 주장을 하였다. 다만 갑조선을 버려두고 만들지 않으면 제조하는 체제를 잊게 된다면서 1~2척을 만들어 모형(模型)으로 삼고 배 만들기 등을 관장하는 관청인 전선색(典船色)이 그 제조하는 규식을 적어 의궤(儀軌)로 만들도록 하였다(『문종실록』 1년 5월 25일).

참고문헌

  • 육군본부, 『한국군사사』, 경인문화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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