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순청(監巡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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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밤에 궁중과 도성 안팎을 순찰하는 순라군을 감독하던 지휘관들의 관서.

개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된 직후에는 정치적 불안감이 크게 고조되었다. 이에 반대 세력의 진압과 치안 유지를 위해 궁성과 도성 주위의 순찰을 한층 강화했다. 중앙 군제(軍制)에 대한 개편 작업을 통해 10위(衛), 10사(司) 소속의 병력을 순라군(巡邏軍)으로 활용하면서 그들을 감독하는 지휘관들을 감순절제사(監巡節制使)라 칭하고 별도의 관서를 설치해 감순청이라고 했다. 사병(私兵) 혁파를 계기로 총제제(摠制制)를 도입하여 감순절제사를 감순총제(監巡摠制)로도 불렀으나 관서에는 변화가 없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왕조 교체가 단행된 직후에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상태였기 때문에 불만 세력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한편 치안 유지에 만전을 기하였다. 이에 중앙 군제를 개편하면서 특히 궁성과 도성 안팎을 순찰하는 순라군의 증강에 힘썼다. 중앙군제를 10위, 10사 등으로 바꾸면서 중앙군이 번(番)을 나누어서 교대로 순찰하게 했다. 순라군을 책임지고 감독하는 지휘관은 감순절제사라고 했으며 이들의 관서로 감순청을 설치하였다. 감순청은 순청(巡廳)이라고도 불렀다(『세종실록』 13년 2월 5일).

조직 및 역할

태조는 왕조가 개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왕자나 종친·공신들도 중앙군의 절제사로 임명하여 교대로 순라군을 감독하게 했다. 일례로 태종도 즉위하기 전인 정안군(靖安君) 시절에 감순절제사로 감순청에서 휘하의 도진무(都鎭撫)를 대동하고 순라군을 감독하였다(『세종실록』 20년 9월 25일).

감순청에는 감순절제사 외에 그 아래에서 잡무 등을 처리하던 전리(典吏) 등의 서리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태종실록』 9년 9월 5일). 이들 이외의 관원은 자료가 없어 알 수 없으며, 감순절제사의 업무도 순라군을 감독하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다.

변천

감순청은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태종 측의 중요한 근거지로 활용되었다(『태조실록』 7년 8월 26일). 태종은 권력을 장악한 뒤 1400년(정종 2) 사병 혁파를 계기로 또다시 전면적인 중앙 군제 개편에 나섰다. 이때 군령(軍令) 분야의 무관직으로 총제제를 도입하였고, 이로 인해 감순절제사가 감순총제로 개칭되었다. 하지만 감순청의 칭호와 역할에는 변함이 없었다(『세종실록』 13년 2월 5일). 감순청의 폐지 시기는 자료의 결여로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