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란록(勘亂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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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728년(영조 4)에 일어났던 이인좌·정희량의 난에 대한 전모를 정리하여 편집한 책이다.

개설

무신란은 김일경(金一鏡)을 비롯한 소론 일부 과격파들이 저지른 역란이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붕당 간의 갈등과 당론이 최초의 근원으로서 해석되며, 소론과 서덕수를 비롯한 노론의 공동 책임이 강조되었다. 조현명(趙顯命)이 쓴 어제 서문에는 이 사건이 붕당 때문에 일어났음을 지적하고 이와 같은 변란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이 책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각 죄인의 공초 및 이인좌의 공초가 초록되어 있다. 또한 이인좌난의 공신인 오항명의 개선광경, 공신들의 명단, 감훈별단이 들어 있다. 같은 사건을 다룬 자료 중에서는 가장 체계적인 경과 보고서로서, 정부 측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영조의 명에 의해, 1728년(영조 4)에 있었던 ‘이인좌·정희량의 난’에 대한 전후시말을 각종 자료에서 뽑아 편집하였다. 난이 평정된 1729년(영조 5) 정석삼·이광좌·조문명 등의 진언에 따라, 영조는 좌의정조태억에게 이 일을 주관하게 하였으며, 송인명(宋寅明)·박사수(朴師洙)가 편집하여, 같은 해에 간행하였다.

이 책에는 조현명(趙顯命)이 쓴 영조의 어제서문(御製序文)이 머리에 수록되어 있다. 이인좌의 난은 신임사화(辛壬士禍)의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이 사화는 1721년(경종 1)~1722년(경종 2)에 소론의 목호룡(睦虎龍) 형제가 김일경 등의 사주를 받아, 노론이 경종을 시해하려 한다고 고발하여 일어난 큰 옥사였다. 이 때 노론인 이이명(李頤命)·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사대신 및 100여 명이 사사 혹은 귀양 가게 되었는데, 영조가 즉위하자, 신임시화는 무고임이 밝혀져 목희룡·김일경 등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인좌는 김일경의 잔당으로 밀풍군(密豊君)을 추대하여 1728년 난을 일으켰는데, 주로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이 사건은 다음 해에 도순무사인인 오명항에 의하여 평정되었다. 영조는 이 난 후 이와 같은 변란의 재발을 막기 위한 작업으로 이 책을 편찬하였음을 서문에서 명시하고 있다. 영조는 이 사건의 원인을 붕당에서 찾고 있다. 그리하여 붕당의 유래를 서술한 다음, 신임사화의 고발자인 목호룡의 무고는 곧 김일경·박필몽이 만들어 낸 것이며, 교문(敎文)을 지어 횡포를 부리고 군부(君父)를 속이고 반역한 것도 그들 때문이라 하고, 그 근원을 붕당에 돌리고 있으며, 붕당의 폐해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서지 사항

6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활자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곽(半郭)은 22.6×15.1cm이며, 10행 18자의 유계(有界), 주쌍행(註雙行), 상하내향2엽화문어미(上下內向2葉花紋魚尾)를 갖추고 있다.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난의 진행과정을 서술하면서, 그 진행과정 사이에 여러 관련 죄인의 공초가 초록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것을 통하여 외면적으로만 파악하였던 난의 원인과 내용 및 당대에서의 파급범위를 구명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난이 일어나기 전 해인 1727년(영조 3)의 기록을 보면, 이것이 그 이전의 변산반도의 ‘도적’들이나 민란들과 무관하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이 난이 단순한 정치싸움이라기보다는 민란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기록에 의하면, 난의 규모가 삼남지방(충청도 충주, 경기 남쪽 죽산·안성 및 경상도의 거창·안음 등)의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함경도·평안도 등지에서까지 이에 동의하는 움직임이 일어난 만큼 전국적인 규모였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인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이 난을 소론측이 일으킨 난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농민봉기군층(‘도적’으로 지칭됨)이 이들에 의해 모집되어, 수적으로는 광범위하게 참가하고 있으나, 그 공로는 당색이 있는 자들에게 모두 돌아가고, 농민봉기군 측에 대한 자료는 제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각인의 공초를 세밀히 살핌으로써, 전모가 밝혀질 것이다. 또한 이 책에는 다른 공초 자료에서 누락된 이인좌의 공초가 초록되어 있어, 난의 성격 및 규모를 밝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이 외에 사도도순무사(四道都巡撫使)병조판서오명항의 개선광경과 헌괵례(獻馘禮)의 광경도 제시되어 있고, 난의 토평(討平)에 공이 있는 공신들의 명단과 감훈별단(勘勳別單) 등이 제시되어 있어, 같은 사건을 다룬 자료들 중에서 가장 체계가 있는 난의 경과보고서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의 봉기군 측의 사료는 역적의 후손들이 연좌율(連坐律)에 걸려, 그들의 기록을 남길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책이 이인좌의 난을 규명하는 데는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또한 이 난을 분수령으로 하여 노론이 완전 득세하였기 때문에 이 책은 정치사적인 면에서도 특히 의미 있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참고문헌

  • 진유라, 「조선후기 호남지역 중기(重記)에 수록된 기록물 분석」, 경북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 허태용, 「<경종실록(景宗實錄)>을 통해서 본 소론(少論)의 정치 의리(義理) 검토」, 『민족문화연구』 제60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13.
  • 허태용, 「英祖代 蕩平政局下 國家義理書 편찬과 戊申亂 해석 - 『勘亂錄』, 『御製大訓』, 『闡義昭鑑』의 비교 검토」, 『사학연구』 제116호, 한국사학회, 2014.
  • 허태용, 「1728년 戊申亂의 진압과 『勘亂錄』의 편찬」, 『한국사연구』 제166호, 한국사연구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