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녀 복억 태실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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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억(福億)은 연산군의 왕녀이나 모친이 확인되지 않으며 『연산군일기』 , 『선원계보기략』 등의 기록상에도 그 존재가 나타나지 않아 조졸한 것으로 추정된다. | 복억(福億)은 연산군의 왕녀이나 모친이 확인되지 않으며 『연산군일기』 , 『선원계보기략』 등의 기록상에도 그 존재가 나타나지 않아 조졸한 것으로 추정된다. | ||
− | 태지석에 의하면 복억은 1499년에 태어났으며 같은 해 5월 9일에 삼척군 삼척면에 안태한 사실을 알 수 있다. | + | 태지석에 의하면 복억은 1499년에 태어났으며 같은 해 5월 9일에 삼척군 삼척면에 안태한 사실을 알 수 있다.<ref>『翁主福億胎誌石』, 1929, 弘治十二年己未生 翁主福億胎 弘治十二年己未五月九日 藏于三陟郡三陟面 昭和四年 月 日移藏.</ref> |
복억 태실의 초안지는 강원도 삼척시 자원동 산56으로 바로 아래 민가가 인접해있으며 정상부에 인위적인 구덩이가 확인되어 태실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복억 태실의 초안지는 강원도 삼척시 자원동 산56으로 바로 아래 민가가 인접해있으며 정상부에 인위적인 구덩이가 확인되어 태실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
− | 1995년 관동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삼척군지(三陟郡誌)』(1916), 『진주지(眞州誌)』(1963), 『삼척군지』(1984)의 기록을 통해 자지동(紫芝洞, 1995년 紫園洞으로 개칭) 서쪽에 태봉산(157.3cm)이 자리하고 있으며 연산군의 공주 태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현지조사를 진행하지 못하여 정확한 현상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 + | 1995년 관동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삼척군지(三陟郡誌)』(1916), 『진주지(眞州誌)』(1963), 『삼척군지』(1984)의 기록을 통해 자지동(紫芝洞, 1995년 紫園洞으로 개칭) 서쪽에 태봉산(157.3cm)이 자리하고 있으며 연산군의 공주 태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현지조사를 진행하지 못하여 정확한 현상을 파악하지 못하였다.<ref>관동대학교 박물관, 『三陟의 歷史와 文化遺蹟』, 삼척시, 1995, 165쪽.</ref> |
이렇게 구전으로만 태실의 존재가 전해지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실비가 현장 조사로 발견되면서 태실이 실존함을 확인하였다. | 이렇게 구전으로만 태실의 존재가 전해지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실비가 현장 조사로 발견되면서 태실이 실존함을 확인하였다. |
2020년 9월 11일 (금) 23:39 기준 최신판
연산군 왕녀 복억 태실(燕山君 王女 福億 胎室) | |
식별자 | PC032 |
---|---|
분류 | 왕자공주 태실 |
한글명 | 연산군 왕녀 복억 태실 |
한자명 | 燕山君 王女 福億 胎室 |
영문명 | Placenta Chamber of Princess Bokeok |
피안자 명칭 | 복억(福億) |
피안자 이칭 | 이복억(李福億) |
피안자 부 | 연산군(燕山君) |
피안자 모 | 미상 |
피안자 생년월일 | 1499 |
피안자 몰년월일 | 미상 |
안태 연월일 | 1499.05.09 『복억옹주 태지석』 |
안태지 기록 | 강원 삼척군 삼척면 『서삼릉 복억 태실 후면 각자』 |
안태지 좌표(위도) | 37°43'99.07"N |
안태지 좌표(경도) | 129°13'89.47"E |
안태지 주소 | 강원도 삼척시 자원동 산56 |
문화재 지정여부 | 미지정 |
이안 연월일 | 1929 추정 |
이안지 |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서삼릉 내 |
이안지 좌표(위도) | 37°66'45.61"N, |
이안지 좌표(경도) | 126°86'06.29"E |
지문 | 弘治十二年己未生,翁主福億胎,弘治十二年己未,五月,九日,藏于三陟郡三陟面,昭和四年,月,日移藏 |
지문 찬자 | 이왕직 예식과(李王職 禮式課) |
지문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
태항아리 | 복억옹주 태지석 및 내항아리와 외항아리 몸체 일부 |
태항아리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
목차
내용[편집]
연산군의 옹주이나 누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태봉》에 따르면 복억의 태실은 강원도 삼척에 위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태실지에서 그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이 지역에서 편찬된 자료에서 태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상세[편집]
복억(福億)은 연산군의 왕녀이나 모친이 확인되지 않으며 『연산군일기』 , 『선원계보기략』 등의 기록상에도 그 존재가 나타나지 않아 조졸한 것으로 추정된다.
태지석에 의하면 복억은 1499년에 태어났으며 같은 해 5월 9일에 삼척군 삼척면에 안태한 사실을 알 수 있다.[1]
복억 태실의 초안지는 강원도 삼척시 자원동 산56으로 바로 아래 민가가 인접해있으며 정상부에 인위적인 구덩이가 확인되어 태실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1995년 관동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삼척군지(三陟郡誌)』(1916), 『진주지(眞州誌)』(1963), 『삼척군지』(1984)의 기록을 통해 자지동(紫芝洞, 1995년 紫園洞으로 개칭) 서쪽에 태봉산(157.3cm)이 자리하고 있으며 연산군의 공주 태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현지조사를 진행하지 못하여 정확한 현상을 파악하지 못하였다.[2]
이렇게 구전으로만 태실의 존재가 전해지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실비가 현장 조사로 발견되면서 태실이 실존함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현재 태실비는 사라져 행방을 알 수 없으며 태실비의 명문만 확인된다. 앞면은 ‘王女福億阿只氏胎室’이라 새겼으며 뒷면은 ‘弘治十二年己未五月九日巳時立’으로 전한다. [3]
지식 관계망[편집]
계보도 지식 관계망[편집]
시각자료[편집]
파노라마[편집]
스틸샷 갤러리[편집]
수치지형도[편집]
전자지도[편집]
참고 자료[편집]
학술적 성격의 저작물[편집]
1.고문헌
- 이왕직(李王職) 예식과(禮式課), 『태봉(胎封)』, 1928,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2.단행본
- 국립문화재연구소, 『서삼릉태실』, 국립문화재연구소, 1999.
- 심현용, 『한국 태실 연구』, 경인문화사, 2016.
3.논문
- 윤석인, 『조선왕실의 태실 변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