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골) 상속전민 상송건 소지 전사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원문) |
(→원문) |
||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3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33번째 줄: | 33번째 줄: | ||
(09) 區別懸錄是乎則 推此量案足以表證於百年之下是去乙 何 | (09) 區別懸錄是乎則 推此量案足以表證於百年之下是去乙 何 | ||
− | (10) | + | (10) 以爲乎喩 丙子年称以和會成文是如 矣祖父前別得田畓 則數 |
(11) 多是如執言毁出是遣 奴婢則文記中無後所生三字是如 施 | (11) 多是如執言毁出是遣 奴婢則文記中無後所生三字是如 施 | ||
− | (12) | + | (12) 行遺漏載錄於自家衿下是乎旀 筆執則必使矣祖父是乎則當 |
(13) 日情事處措之難言 當復如何 不爲筆執兄弟之間恐有乖拂 | (13) 日情事處措之難言 當復如何 不爲筆執兄弟之間恐有乖拂 | ||
53번째 줄: | 53번째 줄: | ||
(03) 세상을 떠나고 가운데(최동집)는 세자의 사부를 지냈는데 최정석의 고조이자 전창수의 외고조라. 매부는 (東萊鄭氏)정 | (03) 세상을 떠나고 가운데(최동집)는 세자의 사부를 지냈는데 최정석의 고조이자 전창수의 외고조라. 매부는 (東萊鄭氏)정 | ||
− | (04) 천섭, (達城徐氏)서강인이라. 그 막내가 이 | + | (04) 천섭, (達城徐氏)서강인이라. 그 막내가 이 사람(최경제)의 조부라 저희 증조부(최계)가 저희 조부(최동직)에게 아명으로 약간의 |
− | (05) 전답을 별급하'''시옵고'''<ref>是白遣:~이고, ~이옵고</ref> 임술년(1622)분은 저희 고조가 벼슬살이로 경성에 '''있다가'''<ref>是如可:~이다가. =是加可</ref> | + | (05) 전답을 별급하'''시옵고'''<ref>是白遣:~이고, ~이옵고</ref> 임술년(1622)분은 저희 고조가 벼슬살이로 경성에 '''있다가'''<ref>是如可:~이다가. =是加可</ref> 발의 |
(06) 종기로 인하여 세상을 뜨셨는데 임종시 돌보려는 일념으로 막내아들을 잊지 못하고 거듭 전답을 별 | (06) 종기로 인하여 세상을 뜨셨는데 임종시 돌보려는 일념으로 막내아들을 잊지 못하고 거듭 전답을 별 | ||
63번째 줄: | 63번째 줄: | ||
(08) '''하였는데'''<ref>是如乎(~이다온):~하였는데</ref> 갑술양안을 할 때에 각 집에서 깃부(전답)과 별득전답'''으로'''<ref>乙以(을로):~으로. ~으로써</ref> 각각 나누어가져 노의 이름으로 | (08) '''하였는데'''<ref>是如乎(~이다온):~하였는데</ref> 갑술양안을 할 때에 각 집에서 깃부(전답)과 별득전답'''으로'''<ref>乙以(을로):~으로. ~으로써</ref> 각각 나누어가져 노의 이름으로 | ||
− | (09) 구별하여 달아 기록'''한즉'''<ref>是乎則:~이온즉</ref> 이 양안으로 미루어 족히 백년 | + | (09) 구별하여 달아 기록'''한즉'''<ref>是乎則:~이온즉</ref> 이 양안으로 미루어 족히 백년 아래에서도 명백히 증명(表證)되'''었거늘'''<ref>是去乙(이거/거늘):~이거늘, ~있었거늘</ref> 어찌 |
− | (10) | + | (10) '''하올지'''<ref>爲乎喩(온디):~하온지. ~하올지</ref>(何以爲乎喩) 병자년(1636)에 화회성문을 하였'''다고'''<ref>是如:~이다, ~이라고, ~이라는</ref> 칭하는데 저희 조부에게 별득한 전답은 수가 |
(11) 많다고 말꼬리를 잡고 훼출(毁出:제거해 버리다)해 버'''렸고'''<ref>是遣(이고):~이고. =以遣, 只遣</ref> 노비는 문기 중에 후소생 3글자가 없다고 | (11) 많다고 말꼬리를 잡고 훼출(毁出:제거해 버리다)해 버'''렸고'''<ref>是遣(이고):~이고. =以遣, 只遣</ref> 노비는 문기 중에 후소생 3글자가 없다고 | ||
71번째 줄: | 71번째 줄: | ||
(12) 시행에서 우리집 몫에서 빼놓고 기록하'''였으며'''<ref>是乎旀:~이오며</ref> 필집은 반드시 우리 조부인 최동직으로 시'''킨즉'''<ref>是乎則:~이온즉</ref> 당 | (12) 시행에서 우리집 몫에서 빼놓고 기록하'''였으며'''<ref>是乎旀:~이오며</ref> 필집은 반드시 우리 조부인 최동직으로 시'''킨즉'''<ref>是乎則:~이온즉</ref> 당 | ||
− | (13) 일의 정사(事情, 형편. 분재 상황을 말함)에서 조처(措處=處措)를 말하기 어렵다. 마땅히 다시 이를 어떻게 하는가(如何). 필집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不爲筆執)은 형제지간에 반목, 어긋남(乖拂)의 단서가 될까 | + | (13) 일의 정사(事情, 형편. 분재 상황을 말함)에서 조처(措處=處措)를 말하기 어렵다. 마땅히 다시 이를 어떻게 하는가(如何). 필집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不爲筆執)은 형제지간에 반목, 어긋남(乖拂)의 단서가 될까 두려'''웠''' |
− | (14) '''고'''<ref>是遣(이고):~이고</ref> 그 행한 바를 | + | (14) '''고'''<ref>是遣(이고):~이고</ref> 그 행한 바를 (최동직이) 이루고자 한다면 마침내 죽은 아버지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므로'''<ref>是乎:~인, ~이므로, ~이기에</ref> 저희 지친 간에 |
(15) 쟁송하기 어려워 억울함과 사무침을 가슴에 품고 이미 삼대가 지'''났으니'''<ref>是如乎(~이다온):~이라고 하는, ~이라고 하더니</ref> //《서론》 | (15) 쟁송하기 어려워 억울함과 사무침을 가슴에 품고 이미 삼대가 지'''났으니'''<ref>是如乎(~이다온):~이라고 하는, ~이라고 하더니</ref> //《서론》 |
2019년 8월 22일 (목) 01:56 기준 최신판
개요
- 강독교재 하권 327면
원문
탈초 및 정서 | 번역 |
---|---|
(01) 崔慶濟崔壽岳李震明等 (02) 右謹言所志極天寃憤情由段 矣曾祖有三男二女 伯生員早 (03) 世 沖師傅崔鼎錫之高祖全昌壽之外高祖也 妹夫則鄭 (04) 天涉徐强仁也 季卽矣身之祖父也 矣曾祖以矣祖父兒名如干 (05) 田畓別給是白遣 壬戌年分 矣高祖宦遊京城是如可患足 (06) 部瘇因爲別世而臨終之時眷眷一念未忘末子又以田畓別 (07) 給是如乎 厥後十五年五娚妹別得田民果衿付田民分執使 (08) 耕是如乎甲戌量案之濟各家衿付及別得田畓乙以各執奴名 (09) 區別懸錄是乎則 推此量案足以表證於百年之下是去乙 何 (10) 以爲乎喩 丙子年称以和會成文是如 矣祖父前別得田畓 則數 (11) 多是如執言毁出是遣 奴婢則文記中無後所生三字是如 施 (12) 行遺漏載錄於自家衿下是乎旀 筆執則必使矣祖父是乎則當 (13) 日情事處措之難言 當復如何 不爲筆執兄弟之間恐有乖拂 (14) 之端是遣 欲遂所爲則竟負凶父之恩是乎 矣至親之間難於 (15) 爭訟含寃抱痛已過三代是如乎 //《서론》 |
(01) 최경제 최수악 이진명 등 (02) 본 소지로써 하늘에 이르도록 원통하고 분한 정유를 삼가 올리는 것은[1] 저희 증조(崔誡)가 3남2녀(崔東嵂, 崔東㠍, 崔東𡸽, (壻)鄭氏, (壻)徐氏)가 있는데 맏이(최동률)는 생원으로 일찍 (03) 세상을 떠나고 가운데(최동집)는 세자의 사부를 지냈는데 최정석의 고조이자 전창수의 외고조라. 매부는 (東萊鄭氏)정 (04) 천섭, (達城徐氏)서강인이라. 그 막내가 이 사람(최경제)의 조부라 저희 증조부(최계)가 저희 조부(최동직)에게 아명으로 약간의 (05) 전답을 별급하시옵고[2] 임술년(1622)분은 저희 고조가 벼슬살이로 경성에 있다가[3] 발의 (06) 종기로 인하여 세상을 뜨셨는데 임종시 돌보려는 일념으로 막내아들을 잊지 못하고 거듭 전답을 별 (07) 급하셨는데 그 뒤[4] 15[14]년[5] 5남매가 별득전민[6]과 깃부전민[7]으로 경작하게[8] (08) 하였는데[9] 갑술양안을 할 때에 각 집에서 깃부(전답)과 별득전답으로[10] 각각 나누어가져 노의 이름으로 (09) 구별하여 달아 기록한즉[11] 이 양안으로 미루어 족히 백년 아래에서도 명백히 증명(表證)되었거늘[12] 어찌 (10) 하올지[13](何以爲乎喩) 병자년(1636)에 화회성문을 하였다고[14] 칭하는데 저희 조부에게 별득한 전답은 수가 (11) 많다고 말꼬리를 잡고 훼출(毁出:제거해 버리다)해 버렸고[15] 노비는 문기 중에 후소생 3글자가 없다고 (12) 시행에서 우리집 몫에서 빼놓고 기록하였으며[16] 필집은 반드시 우리 조부인 최동직으로 시킨즉[17] 당 (13) 일의 정사(事情, 형편. 분재 상황을 말함)에서 조처(措處=處措)를 말하기 어렵다. 마땅히 다시 이를 어떻게 하는가(如何). 필집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不爲筆執)은 형제지간에 반목, 어긋남(乖拂)의 단서가 될까 두려웠 (14) 고[18] 그 행한 바를 (최동직이) 이루고자 한다면 마침내 죽은 아버지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므로[19] 저희 지친 간에 (15) 쟁송하기 어려워 억울함과 사무침을 가슴에 품고 이미 삼대가 지났으니[20] //《서론》 |
주석
- ↑ 段(, 은, 단은):~는. ~인즉, ~딴
- ↑ 是白遣:~이고, ~이옵고
- ↑ 是如可:~이다가. =是加可
- ↑ 厥後: 그 이후(以後) *厥(그 궐)
- ↑ 임술년(1622)~병자년(1636)
- ↑ 급제 등의 특별한 사유로 부모에게 별도로 얻은 전민
- ↑ 부모님 사후 형제자매 간 화회분배로 몫을 나누어 가진 전민
cf 1) 별급(別給) v. 깃급(衿給) *衿(옷깃 금): 깃
2) 화회는 分執이란 용어를 사용, 分給(x) - ↑ 使:~하게 하다
- ↑ 是如乎(~이다온):~하였는데
- ↑ 乙以(을로):~으로. ~으로써
- ↑ 是乎則:~이온즉
- ↑ 是去乙(이거/거늘):~이거늘, ~있었거늘
- ↑ 爲乎喩(온디):~하온지. ~하올지
- ↑ 是如:~이다, ~이라고, ~이라는
- ↑ 是遣(이고):~이고. =以遣, 只遣
- ↑ 是乎旀:~이오며
- ↑ 是乎則:~이온즉
- ↑ 是遣(이고):~이고
- ↑ 是乎:~인, ~이므로, ~이기에
- ↑ 是如乎(~이다온):~이라고 하는, ~이라고 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