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2-R3-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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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인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2월 8일 (목) 23:56 판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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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악에 가수가 있었다 》 태조의 공덕을 칭송하는 융화

Story

융화는 왜구와 야인의 침입을 격퇴하여 변방을 편안케 하고 그들을 복종시킨 공덕을 칭송한 악장이다. 이성계는 자신의 탁월한 군사적 재능과 고려인 및 여진족으로 구성된 강력한 친병조직을 바탕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1361년 독로강만호(禿魯江萬戶) 박의(朴儀)가 반란을 일으켜 정부군을 격파하자 고려정부의 명령을 받고 출동하여 박의를 살해했다. 이어 홍건적에게 함락된 개경의 탈환작전에 참여하여 선봉으로 성을 돌파하는 전공을 세웠다. 1362년 심양행성승상(審陽行省丞相)을 자처하는 원나라의 장수 나하추(納哈出)가 수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탁월한 용병술로 대적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1364년 최유(崔濡)가 기황후(奇皇后)를 통해 덕흥군(德興君)을 고려 왕으로 내세우고 요양성의 군사 1만 명을 동원하여 평안도지방을 침입하자 최영(崔瑩)과 함께 수주(隨州) 달천(獺川)에서 이들을 섬멸했다. 그가 출전한 틈을 타 여진족들이 그의 외종사촌 삼선(三善)·삼개(三介) 형제를 앞세워 동북면에 침입하여 함주까지 함락시키자 즉시 회군하여 이들을 격퇴했다. 그해에 밀직부사가 되었고 단성양절익대공신(端誠亮節翊戴功臣)의 호를 받았다. 1370년에는 원정군을 이끌고 요동까지 가서 원의 잔병을 모아 동녕부(東寧府)를 점령하고 고려를 위협하던 김백안(金伯顔) 등을 물리쳤다. 1371년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가 되어 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1372년 이후에는 북방은 안정된 반면 왜구의 침입이 잦아졌는데, 대규모 침입이 있을 때마다 이성계의 군대는 맹활약을 했다. 특히 1377년(우왕 3)에는 경상도 일대와 지리산에서 왜구와 격전을 벌여 승리했다. 1380년 최무선(崔茂宣)에 의해 해로가 끊긴 왜구들이 내륙으로 들어와 상주·경산·함양을 차례로 함락시키자 운봉에서 이들과 교전하여 적장 아기발도(阿其拔都)를 사살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이것이 유명한 황산대첩(荒山大捷)인데 이때 노획한 말만 1,600필이었다. 1382년 여진인 호바투(胡拔都)가 동북면 일대에 침입하자 동북면도지휘사가 되어 출전하여 길주에서 궤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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