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2년(영조 28) 3월에서 5월까지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맏아들인 의소세손(懿昭世孫, 1750 ~ 1753)을 의소묘(懿昭墓)에 매안한 뒤 신주[우주(虞主)]를 받들고 돌아와 혼궁인 창경궁의 강서원에 봉안하기까지‘예장도감’에서 담당한 일만을 기록한 의궤이다. 전체 불분권(不分卷) 상・하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록은 없으나, 도청의궤(都廳儀軌), 시상(施賞), 별공작의궤(別工作儀軌)로 구분되고 각 실입질(實入秩)과 용환질(用還秩), 공구질(工匠秩)을 기록하였다. 의소세손이 훙서(薨逝)한 장소를 실록에서는 통명전(通明殿)이라 하였으나 의궤에는 숭문당(崇文堂)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와 함께 세손의 발인 행렬을 알 수 있는 반차도가 담긴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가 파리도서관에서 국내로 반환되어 2011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으로 소개되었다. 1752년(영조 28) 의소세손이 세상을 떠났을 때, 죽은 지 석 달 만인 5월 12일에 지금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해당하는 양주 안현(鞍峴) 남쪽 기슭에 예장하고 의소묘라 불렀는데, 1870년(고종 7)에 의령원으로 원호를 고쳤으며, 1949년 6월 7일에 현재의 경기도 서삼를 내의 효장묘 뒤쪽으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