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11대 국왕 조선_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尹氏)를 단릉형식으로 모신 왕비릉으로 3개의 왕릉(희릉·효릉·예릉)과 후궁·대군·공주의 무덤들로 이루어진 고양 서삼릉(高陽 西三陵, 사적 제200호) 경내에 있다. 장경왕후는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후에 숙의(淑儀)가 되었다가, 이듬해 원비 단경왕후(端敬王后)가 폐위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1515년(중종 10)에 인종이 되는 왕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승하하였는데, 광주(廣州)에 있는 태종의 헌릉(獻陵) 서쪽 언덕에 안장하고 능호를 희릉이라 하였다. 그 뒤 희릉의 입지가 불길하다는 김안로(金安老)의 주장에 따라 1537년(중종 32) 현재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서삼릉으로 옮기게 되었다. 희릉의 현궁은 회격분(灰隔墳)으로 조성되었으며, 능상에는 봉분을 만들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뒤쪽에는 곡장(曲墻)을 설치했다. 봉분의 사방에는 호석과 양석 각 4개씩을 배치하였다. 봉분 상계(上階)에는 혼유석과 망주석 1쌍을 설치하고, 중계(中階)에는 장명등과 문인석, 마석 1쌍씩을, 하계(下階)에는 무인석과 마석 1쌍씩을 두었다. 맞배지붕으로 된 정자각은 정전 3칸에 배위청 3칸으로 조성되었다. 1544년(중종 39)에 조선_중종이 승하하자, 중종의 능을 희릉 서쪽 언덕(현 철종 예릉)에 조성하면서 동원이강릉 형식을 취하고 능호를 합하여 정릉(貞陵)이라 하였으나, 1562년(명종 17)에 중종의 능만 문정왕후(文定王后)에 의해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의 선릉(宣陵) 곁으로 천장하면서 장경왕후의 능을 다시 희릉으로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