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11대 국왕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尹氏)를 단릉형식으로 모신 왕비릉으로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다.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무덤인 강릉(康陵)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1호로 지정되었다. 문정왕후 윤씨는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모후이다. 중종의 제1계비인 장경왕후 윤씨가 1515년(중중 10년) 2월에 세자(인종)를 낳은 뒤 산후병으로 승하하자 문정왕후가 제2계비가 되어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 뒤 문정왕후가 재위 8개월만에 승하한 인종의 뒤를 이어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명종을 대신해 8년간 수렴청정하면서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와 동원(同原)에 있던 중종의 정릉(靖陵)을 봉은사(奉恩寺) 곁으로 천장(遷葬)하고 자신도 그 옆에 묻히려고 하였으나, 정릉의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물이 들어 자주 침수되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들 명종에 의해 이 곳 태릉에 안장되었다. 그 대신 아들 명종의 능인 강릉(康陵)이 같은 능역에 조성되었다. 태릉은 왕비의 단릉(單陵)이라 믿기 어려울만큼 웅장하여 문정왕후의 세력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봉분을 감싼 12면 병풍석에는 12지신상과 구름 문양을 새겼고, 병풍석 위의 만석(滿石) 중앙에 12간지를 문자로 새겼다. 봉분 바깥쪽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봉분 앞에 상석과 망주석 1쌍을 세웠다. 봉분 주위로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2쌍을 교대로 배치시켰으며, 뒤쪽으로는 곡장을 쌓았다. 봉분 아랫단에 문인석과 석마(石馬) 각 1쌍, 팔각 장명등이 있고, 가장 아랫단에 무인석과 석마 각 1쌍이 있다. 능원 밑에는 정자각·비각·수직방(守直房)·홍살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