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인재 양성을 위하여 서울에 설치한 유교식 국립대학인 성균관에 입학한 유생들이 기숙하면서 공부하던 곳이다. 태조 7년(1398년)에 창건된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39년(1606년)에 중건하였다. 각각 정면 20칸에 측면 3칸으로 동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정면 1칸을 퇴칸으로 개방하여 마루를 설치하고 본칸에는 온돌을 설치하였다. 방 수는 14개인데 그중 12개의 방을 상재(上齋) 또는 상사(上舍)라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생원과 진사만 들어갈 수 있었다. 두 개씩 남아 있는 방에는 생원과 진사가 되지 못한 즉, 소과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거처라는 뜻에서 하재(下齋)라고 불렀다. 여기에는 문벌이 좋은 유학(幼學)과 사부학당의 학생 중에서 공부를 잘해 올라온 사람들이 기거할 수 있었는데, 이들을 하재생 또는 기재생(寄齋生)이라 불렀다. 2005년 문화재 관리 차원에서 현재는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동재의 첫째 방은 약방이고, 그 다음은 우제일방·장의방·진사칸·하일방·하종방의 순서로 되어 있고, 끝 방을 하재라고 하였다. 유생들은 매일 새벽에 북소리가 한 번 나면 일어나고, 날이 밝기 시작하여 북소리가 두 번 나면 의관을 갖추고 단정하게 앉아서 책을 읽으며, 북소리가 세 번 나면 식당에서 동서로 마주앉아 식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