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11대 국왕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이자 원비인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를 단릉형식으로 모신 왕비릉으로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다. 아버지 신수근(愼守勤)이 매부인 연산군을 위해 반정을 반대하다 성희안(成希顔)과 박원종(朴元宗) 등의 반정 추진파에 살해된 까닭에, 역적의 딸이라 하여 왕비가 된 지 7일 만에 폐위되었다. 1557년(명종 12) 12월 7일에 승하하여 양주 서산 장흥면에 있는 친정의 신가묘역에 안장되었다가, 세상을 떠난 지 182년이 지난 1739년(영조 15)에 왕후로 복위되었다. 능역은 기존 신씨의 묘를 왕비 능의 격에 맞게 규모와 석물을 갖추어 조성하였다. 봉릉(封陵) 이전의 묘소 상태를 기록한 『온릉봉릉도감의궤(溫陵封陵都監儀軌)』에 따르면, 봉분은 지름이 19자에 높이가 7자로 작았고, 석물은 석인 1쌍, 망주석 1쌍, 상석 1개, 장명등 1개로 단출했으며, 표석에는 ‘폐비신씨지묘(廢妃愼氏之墓)’라고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능으로 격상된 뒤에는 단종의 장릉(莊陵)을 예로 삼고, 죽은 후 왕비에 봉해진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인 사릉(思陵)과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능인 정릉(貞陵)의 예에 따라 정비되었다. 능상의 지름은 영조척으로 25자, 높이는 9자로 하였고, 봉분 주위에는 곡장을 둘렀으며, 난간석이나 병풍석은 두지 않았다. 석물은 혼유석 1개, 장명등 1개, 문인석 1쌍과 마석(馬石) 2개, 망주석 1쌍,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각 2개씩으로,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능원 아래에는 정자각과 비각, 홍살문이 있으며, 비각 안에는 1807년(순조 7) 세운 비석이 보호되어 있다. 재실도 있었으나 1970년 철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