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2-R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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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9univ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2월 24일 (토) 22:23 판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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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생각한 개천, 청계천

Story

조선 후기, 한양이 상업도시로 변모하면서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무분별한 벌목 등으로 한양의 도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하천인 개천(開川, 청계천)은 비가 오면 쉽게 범람하여 도선 안의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영조는 1752년 광통교에 행차하여 백성들에게 준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고 신하들의 반대와 염려에도 불구하고 1760년 백성들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개천 준설, 즉 준천(개천의 바닥을 파내어 물길이 원활히 흐르게 하는 것)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

영조는 준천이 시작되자 개천에 나가 곡식과 무명을 나눠주는 등 백성을 위로하고 준천으로 거주지를 잃은 백성에게 도성의 빈집을 제공하는 등 민생을 돌보았다. 또한 백성을 강제로 부역시킨 이전까지의 국가적 토목공사와는 다르게 영조는 동원된 백성들에게 품삯을 지급했다. 이에 21만 5천 여명의 다양한 백성들이 동원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 57일만에 공사가 끝나게 된다.

영조는 비바람이 몰아침에도 준천 현장에 방문하거나 공사가 끝난 뒤 준천에 참여한 참여자들에게 대대적인 포상과 잔치를 베풀어 참여자를 위로하였다. 영조가 준천 참여자를 여러모로 살핀 모습은 버클리대학교가 소장한 『준천계첩』에 실린 4점의 그림을 통해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영조는 준천의 효과를 지속하고자 1760년 경진준천 이후 1773년에도 준천(계사준천)을 진행하는데, 이는 이전의 준천에서 목책으로 임시 가설한 것을 보완한 것이다. 또한 준천의 전 과정을 준천당상 홍계희에게 기록하도록 하여 후대에 전범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또한‘경진지평’이라는 표석을 세워서 이를 기준점으로 삼아 토사를 관리하도록 하여 이후에도 홍수를 대비하도록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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