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실의 위치는 경복궁의 경우, 성종 12년의 기록에 홍문관 뒤에 있다고 하였다. 성종 25년에는 향실이 옛날 서연의 대청 곁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를 옛날 서연청 북쪽편에다 옮겨 설치토록 하였다. 또 연산군 10년에는 인정전의 동․서랑의 처마 밑에 담을 쌓고서 약방과 향실․도총부를 옮겨 배설하라고 하였다. 향실의 구조는 중종 7년의 기사를 보면, 위의 세 칸은 시렁을 매달아 향축을 봉안하고 아래의 두 칸은 관원들의 처소로 만들었다. 선초에는 내시별감 한 사람과 교서관 관원 한 사람이 향과 축문을 담당하였다. 그러니까 향의 전담은 내시별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세종 22년 5월에 향실 별감別監은 내시 중에서 문리文理가 밝게 통한 여섯 사람을 가리어 정원을 삼아서, 서로 교대해가면서 근무토록 하였다. 향 관련 업무가 대폭 늘어났는지, 그 담당자가 한 명에서 6명으로 증가하였다. 향실은 교서관 소속의 관사이며, 재계齋戒하는 신소神所라 하여 매우 중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