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1884년】. 보빙사(報聘使).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 후 이듬해인 1883년에 공사 푸트(Foote, L. H.)가 내한하자 이에 대한 답례와 양국간 친선을 위하여 파견한 사절. 미국에 보낸 보빙사는 전권대신 민영익, 부대신 홍영식, 종사관 서광범, 수원 유길준·고영철·변수·현흥택·최경석 등과 중국인 오례당(吳禮堂), 일본인 미야오카[宮岡恒次郎], 미국인 로웰(Lowell, P.) 등 총 11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7월 26일 인천을 출발하여 일본을 거쳐 9월 18일 미국 대통령 아서(Arthur, C. A.)를 접견하고 국서와 신임장을 제출하였다. 그뒤 40여일 동안 외국박람회·공업제조회관·병원·신문사·조선공장·육군사관학교 등을 방문 시찰하였고, 미국 정치와 농사 개량에 대한 지식도 배웠다. 그 중 유길준은 미국에 남아 갑신정변의 발발 때까지 유학하였다. 개항기 보빙사가 받아들인 신문물은 그 뒤의 신식 우편제도, 육영공원 설치에 영향을 미쳤고, 특히 농무목축시험장과 경작기계의 제작, 수입 등 농업 기술의 연구에도 기여한 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