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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2일 (월) 02:56 판
목차
동관왕묘(東關王廟)는 무엇일까? 》 동관왕묘의 공간적 의미
Story
시간이 지날수록 관왕묘는 점차 한양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곳으로 다가왔을 뿐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조선 후기 관왕묘의 기능이 관우가 지닌 신이력(神異力)보다 관왕묘의 공간적 위치에서 비롯하였다는 점이다. 한양의 남관왕묘와 동관왕묘는 각각 남대문과 동대문 밖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두 성문을 출입하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동관왕묘의 경우 중국 측에서는 남대문 쪽에 세울 계획이었지만 선조의 적극적인 반대와 회유를 통해 동대문 밖 현재의 위치에 세워진 것이다. 선조가 관왕묘를 동쪽에 세우려 했던 것은 도 성 동편이 빈 듯하여 건물을 세우고 못을 파 지맥을 진압해야 좋다는 풍수가의 의견을 믿었기 때문이다.(『선조실록』 권112, 선조 32년 4월 을유.) 이렇게 남대문과 동대문에 하나씩 위치한 관왕묘는 한양을 떠나는 사람에겐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고, 한양을 향해 오는 사람에겐 도착을 알려주는 종착점이 되었다.
한편, 관왕묘는 산 자를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죽은 자들에게도 지나쳐 가야 할 공간 중 하나였다. 국상(國喪)의 발인 때에는 상여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주요 장소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 관례였는데 조선 후기 관왕묘도 이러한 장소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1659년(현종 즉위년)에 승하한 효종의 상여는 돈화문을 통과하여 현재의 동구릉에까지 갔다.207)효종의 능인 영릉(寧陵)은 1659년 애초 건원릉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다가 1673년(현종 14)에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英陵) 근처로 옮겨진다. 이 여정 중에서 제사를 거행하였던 장소를 보면, 돈화문, 이석교(二石橋), 초석교(初石橋), 흥인문, 동관왕묘(別祭), 보제원(普濟院) 옛터 서쪽 노제소(路祭所), 안광동 대천(大川), 사을하리 대천, 석을곶(石乙串) 고개, 소송계중천교(小松溪中川橋), 대송계대천석교(大松溪大川石橋), 삼각산, 수락산, 태릉, 묘동(廟洞) 주정소(晝停所), 망오리현, 인장현 등이다. 이러한 장소는 특별히 노제(路祭)를 지내는 보제원 옛터 외에 상여가 통과하는 문(門), 다리, 산천에 발인의 사실을 아 뢰고 신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일을 마치려는 뜻에서 제사 지내는 대상이자 공간이었다. 문이나 다리와 같이 이쪽과 저쪽을 명확히 구별시키면서도 이어주는 인공 구조물과 산천과 같이 일정 공간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신들에게 지내는 제사라 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관왕묘가 포함된 것은 현전하는 기록으로 볼 때 1632년(인조 10) 인목 대비(仁穆大妃)의 국상부터였다. 동관왕묘는 흥인문 밖, 노제가 열리는 보제원 터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망자의 영혼을 보내는 발인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임시저장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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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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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4-02C | 동관왕묘 | isRelatedTo |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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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우리역사넷 > 교양 우리 역사 > 한국문화사 | 관왕묘의 공간적 기능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07_0060_0010_0020_0010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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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tory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