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2-R4-0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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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관왕묘(東關王廟)는 무엇일까? 》 동관왕묘의 구조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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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관왕묘는 본래 전사청(典祀廳), 재실(齋室), 어막대(御幕臺) 등을 포함한 건물이 더 있었으나, 현재는 크게 외삼문(外三門), 내삼문(內三門), 서무(西廡), 동무(東廡), 정전(正殿)의 다섯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채의 건물과 시설이 동관왕묘의 정문인 외삼문(外三門)을 거쳐 중문(中門)인 내삼문(內三門)으로 입장하면 좌우로는 서무(西廡), 동무(東廡)가, 정면에는 정전(正殿)이 자리하고 있다. 정전은 중국풍으로 지어져 내부에 금동관우좌상을 모시고 있다.

외세의 요구에 부득이 들여온 동관왕묘는 왜란 이래 방치되는 상황에 놓였으나, 남대문, 동대문 인근에 위치해 있다는 남관왕묘, 동관왕묘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서울의 관왕묘는 한양 사람들에게 모종의 기능과 역할을 가진 공간으로 인식되게 된다. 한양을 떠나는 행인에게 있어 동관왕묘는 한양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공간으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망자에게도 비슷했다. 국상(國喪)의 발인 때에는 상여가 지나는 길에 위치한 주요 장소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 관례였는데 관왕묘도 이에 해당했으며, 1632년(인조 10) 인목 대비 국상 때 처음 동관왕묘가 이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전신 관우는 조선에서 길을 가는 이를 수호하는 노신(路神)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관왕묘에서 이루어지던 국가적 제향이 1908년 이래 끊기게 되면서 동관왕묘는 국가적 관리 대상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일제강점기였던 1933년, 총독부는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통해 1936년 5월 23일 동관왕묘 정전을 보물 237호로 지정하면서, 우리나라 곳곳의 다른 관왕묘들과 달리 훼철을 면하고 조선 관왕묘로서의 전형을 보존한 것으로 간주된다. 해방 이후 1963년 1월 21일에도 동관왕묘는 보물 제142호로 재지정되면서, 동대문·청량리 일대 포목상인들의 사교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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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4-02C Story Episode 동관왕묘의 구조와 의미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4-02C 2022: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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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왕묘(關王廟)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4948
참고 우리역사넷 > 교양 우리 역사 > 한국문화사 관왕묘의 공간적 기능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07_0060_0010_0020_0010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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