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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0일 (목) 21:15 기준 최신판


종묘대제 때 희생으로 사용된 흑우와 제주도 》 희생 사육기관 전생서

Story

전생서는 희생을 제사에 사용하기 직전에 사육을 담당한 예조의 속사이다. 처음에는 전구서(典廐署)라 했고, 닭과 돼지를 맡았다가 후에는 거위와 오리 등도 사육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때까지는 제사용 가축의 사육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태종 11년 5월에, 중국 고대 주나라와 고려의 『상정고금례(詳定古今禮)』를 참조하여 전구서에서 희생용 가축을 기르는 것으로 제도를 정하였다. 그러나, 애초에는 제사 전에 미리 선택하여 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살지고 깨끗한지를 알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예조의 관원과 감찰이 함께 전구서에 가서 그 털과 뿔을 보고 선택하게 하고, 제사 전에 미리 기르는 방법을 한결같이 옛 제도에 따르도록 하였다. 전구서에서 기르는 희생은 제사에 쓰기 적합한 정도로 성장한 것들이다. 희생으로 쓰기에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르는 기준은 그 뿔과 털을 보는데, 소는 그 뿔이 한 줌 정도 차야 한다는 것이다. 예조의 관원과 감찰 등이 전구서로 가서 선택하도록 하였다. 사육 장소는 세종 3년 정월의 기록을 보면, 홍제원동의 수연(水碾)과 서강의 잉화도(仍火島) 등처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사육실태가 체계화되어 있지 못하여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가, 수초가 좋은 다른 곳을 골라 양육토록 하였다. 세종 11년에는 수원도호부 양성현에 처음으로 수초가 넉넉하고 좋아 소를 놓아 먹였다.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가축을 사육한 결과, 세종 7년 4월에는 전구서의 암퇘지가 무려 5백8마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당시에 돼지는 당저(唐猪), 기러기는 당안(唐雁)이라 하여 중국산을 길렀다. 그것은 조선 국왕의 국상에 조문하러 온 중국사신이 휴대한 생품(牲品)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사신을 통해 생품과 의물(儀物)을 보내 사제(賜祭)하였는데, 정종 국상 때의 생품은 양(羊)·시(豕)·계(鷄)·아(鵝)가 각 두 마리였다. 이 중에서 양과 시는 전구서에, 당안은 예빈시에 내려 기르도록 하였다. 따라서 당안은 기러기보다는 거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구서에서는 1년 동안 소용되는 희생을 보면, 종묘제사 때는 검은 송아지 5두(頭), 영녕전제사 때는 검은 송아지 2두, 사직제사 때는 검은 큰 소 3두, 문선왕 석전제 때는 큰 황소 2두, 문소전 별제(別祭) 때는 누런 송아지 2두를 봄과 가을에 점우별감(點牛別監)이 선택해 올렸다. 그런데 세종 21년 2월에 점우별감을 혁파하였다. 그리하여 수원부 홍원곶(弘原串)과 양성현 괴태길곶(槐台吉串)에서 방목하는 소 중에서 수에 따라 골라 보내도록 하였다. 전생서의 사육 가축은 각 지방에서 공납한 것을 기반으로 하였다. 세조 5년 9월의 기록을 보면, 강원도의 여러 고을에서 공납한 생저(生猪)가 전구서에 50구, 분예빈시에 97구라 하였다. 또 사재감에서도 납입한 건저(乾猪)가 있다는데, 48구였다. 이때 영서는 놔두고 영동 여덟 고을의 생저는 경기 여러 고을의 건저와 바꾸어서 공안에 기록하도록 하였다. 전구서는 세조 6년(1460) 5월에 전생서로 개칭하였다.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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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3-06A Story Episode 희생 사육기관 전생서 희생 사육기관 전생서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3-06A 2022: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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