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모(洪錫謨, 1781~1857)의 초명은 석영(錫榮), 자는 경부(敬敷), 호는 도애(陶厓), 이다. 본관은 풍산(豐山)이고, 추만공(秋巒公) 홍영(洪霙)의 후손이다. 아버지 홍희준(洪羲俊)은 이조판서와 홍문관 제학을 지내고 기사(耆社)에 들어갔다. 생조부 홍양호(洪良浩)도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문형으로 기사(耆社)에 들어갔다. 1804년(순조 4)에 갑자식년사마시(甲子式年司馬試)에서 생원이 되었고, 음사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장악원 첨정, 남원부사를 지냈다. 부인은 한용탁(韓用鐸)의 딸인 청주 한씨이다. 77세로 장수하였으며, 2남 7녀를 자녀로 두었다. 1857년(철종 8) 10월 15일 부인이 죽고 나흘 뒤에 사망하였다. 1795년(정조 19) 정조가 혜경궁홍씨의 회갑을 축하하며 화성에서 베풀었던 내연(內宴)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시문집인 『도애시집(陶厓詩集)』과 『도애시문선(陶厓詩文選)』, 『유연고(遊燕藁)』 등이 전한다. 특히 『도하세시기속시(都下歲時紀俗詩)』는 한양의 세시풍속을 7언 절구 126수의 시로 묘사하였다. 또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조선시대 한양과 지방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경도잡지(京都雜誌)·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세시기에 속한다. 1911년 조선광문회(朝鮮廣文會)에서 합본으로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