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10월 5일부터 24일까지 20일간 조선농회 주최,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경복궁에서 개최된 공진회. 경복궁 내 서로 다른 총 세 개의 전시관에서 개최되었다. 조선농가의 부업을 장려하여 농촌 개발을 행한다는 명분으로 개최되었으며, 행사장은 경복궁 내 5만평을 활용하여 공진회 때 건설되었던 건물들을 보수.증축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1] 공진회는 성황리에 진행되어 개최 초기인 10월 8일 약 16,000명의 관람객이, [2] 12일에는 10만명[3], 24일에는 35만명[4]에 이르렀다. 당시 항공대가 공진회축하 대비행을 13일부터 일주간 계속하였고, 공진회장에도 비행기가 진열되는 등 이를 보러 온 관람객들로 성황을 이루어 전차수입 등이 증가하였다. [5]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가 표면적으로 총화적인 근대산업의 달성도를 제시 것이었다면, 1923년 부업품공진회는 조선 경제의 발전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1934년에 발간된 『조선부업지침: 조선부업품공진회총람』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920년부터 시작된 경제공황에 따라 금융계 혼란에 빠지고 농촌은 피폐해져 갔다. 쌀값은 하락하고 농촌에서는 소작쟁의가 빈번해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