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고종 15) ~ 1964년】. 이강(李剛). 독립운동가. 1904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가 안창호의 권고로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하고,『공립신문(共立新聞)』을 창간해 주필이 되었다. 1907년 신민회 조직에 가담하였다. 몇 달 뒤에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서 신민회 지회를 설립하였다. 1909년 재로대한인국민회(在露大韓人國民會)를 조직하였다. 『해조신문(海潮新聞)』을 창간하여 편집·논설기자로 활동하였다. 『대동공보(大東共報)』로 제호를 고친 뒤에 편집책임을 맡았다.1909년 10월 안중근(安重根)과 대동공보사 사이의 연락을 담당하였다. 1919년 9월 러시아령에서 파견한 강우규(姜宇奎)의 일본총독 사이토[齋藤]에 대한 폭탄 투척 사건이 일어나자 연루자로 지목되어 일본의 파견 경찰에 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1919년 말 석방되자 바로 상해로 탈출해 임시정부에 참여, 의정원(議政院) 의원·부의장·의장을 역임하였고 흥사단 운동에도 참가해 흥사단 원동지방위원회(遠東地方委員會)를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