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8년】. 이성계 등이 요동정벌을 중단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권력을 장악한 사건.
1388년 최영·이성계 등의 무장세력이 정치를 주도해가는 가운데, 명나라의 철령 이북의 반환요구를 둘러싸고 반목하게 되었다. 최영은 요동정벌을 주장했고,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워 이에 반대하였다. 4불가론은 군량미·군사규모에서 명과 차이가 크며, 농번기에 농민의 호응을 받기 어렵고, 왜구의 침입이 증대할 것이며, 장마철은 시기상 불리하여 군사들이 희생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영과 우왕은 요동공격을 감행했다. 이성계는 1388년 5월 위화도에 이르렀을 때, 여러 장수들을 타이르고 조민수의 동의를 얻어 회군을 단행하였다. ‘목자(木子)가 나라를 얻으리라’는 동요가 유행하는 가운데, 돌아오는 길에 신료 및 인민들이 맞이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으며 노약자들은 성에 올라 환호했다고 한다. 개경을 점령한 뒤 최영과 우왕을 몰아내고 창왕을 즉위시켰다. 이 사건은 이성계가 권력을 장악하고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