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에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 이전까지는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하는 사신을 통신사(通信使)라 불렀으나,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이후 수신사로 바뀌었다. 이는 양국이 근대적 입장에서 사신을 교환한다는 뜻이다. 김기수가 이끈 제1차 수신사(1876) 일행 76명은 그 해 4월 4일서울을 출발하여, 그 달 29일 일본 기선 고류마루(黃龍丸)를 타고 부산을 떠났다. 수신사 일행은 이튿날 시모노세키(下關)에 도착한 뒤 약 2개월간의 시찰을 마치고 윤5월 7일부산에 돌아와 6월 1일서울에 도착한 뒤 고종에게 그 동안의 일을 보고하였다. 이후 조선 정부는 1880년 제2차 수신사로 김홍집(金弘集)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수신사 김홍집 일행은 그 해 5월 28일서울을 출발하여 일본 기선 센자이마루(千歲丸)로 6월 25일부산을 떠나, 그 해 11월에 다시 부산에 돌아왔다. 1881년 10월 25일 영선사 김윤식(金允植)이 기계·군물(軍物)·함선(艦船) 등 기술 전습을 목적으로 유학생(학도·공장 38명)을 데리고 톈진〔天津〕으로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수신사 일본 파견이라는 배경에서 가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