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선왕의 셋째 아들.
충선왕이 내쫓은 궁인(宮人)이 원나라 사람 백문거(白文擧)와 결혼해 낳았다고도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일찍이 중이 되었다가 1351년(충정왕 3)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나라로 도망하였다. 왕이 반원개혁(反元改革) 과정에 기철(奇轍) 등을 죽인 사실을 최유(崔濡) 등이 기황후에게 무고하였다. 이에 원나라에서는 1362년 공민왕을 폐하고 대신 덕흥군을 고려 국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최유가 난을 일으켜 침입했으나, 최영·이성계 등이 이끄는 고려군에게 패해 원나라로 돌아갔다. 1365년 군(君)의 칭호를 빼앗기고, 영평부로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