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 1934년】 의사, 실업가. 1880년 도쿄제국대학 의과대학 별과를 졸업, 1887년 조선으로 건나와 인천공립병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후 잠시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조선 찬화병원(贊化病院)을 운영하던 동생 고조 바이케이(古城梅溪)가 1903년에 중국 톈진의 북양군의학당에 초빙되어 떠나자, 조선으로 다시 건너와 동생 대신 찬화병원 원장직을 맡았다. 1907년~1909년까지 경성의회(京城醫會) 회장을 맡아 경성에서 개업한 일본 의사들의 대표로 활동하는 한편, 경성거류민단 민회의원, 거류민단장 등도 역임했다. 1908년에 동생이 복귀하자 의사업을 그만두고 정미업, 광산업, 금융업 등의 경영자로 새출발하였다. 특히 조선실업은행장 및 실업은행 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고, 구니사키은행, 조선은행 이사, 경성상업회의소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