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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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을_다시_세운_뜻

Story

"봄 정월. 왕이 원구단(圜丘壇)에서 풍작을 기원하고[祈穀] 태조(太祖)를 배향하였다." [1]
환구단 건립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기원을 따지자면 고려 성종 때로 소급된다. 궁궐의 남쪽에 지어졌다. 황제로 자칭하던 때의 일이다. 조선이 되어 태조에게 명나라 황제는 이렇게 말하였다. "조선 국왕(朝鮮國王)이여! 나는 아직도 기운이 난다. 홍무(洪武) 21년에 그대의 조그만 나라 군마(軍馬)가 압록강(鴨綠江)에 이르러 장차 이 중국을 치려 하였다. 그 시절에 이(李) 【휘(諱).】 가 한 번에 회군하여 지금 고려 국에 왕노릇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고쳤으니 자연의 천도(天道)요, 조선 국왕의 지성인데, 지금 두 나라 사이에 수재(秀才)가 매양 농간을 부려 곧지 못하고 바르지 못하였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데는 일마다 지성을 요하며, 직직정정(直直正正)하여야 할 것이니, 해가 어디에서 떠서 어디로 떨어지겠는가? 천하에는 한 개의 해가 있을 뿐이니, 해는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당시 조선의 국왕은 명나라에 제후국임을 자임하였다. [2]
그럼에도 완구단을 환단이라고만 바꾸고 폐지하지 않는다. 이후 세조도 환구단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500년이 지난 1895년(고종 32)에 고종은 갑자기 환구단을 다시 건축하도록 명령한다. [3]
때는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 4월 17일 시모노세키에서 조약이 체결되고 이 조약의 결과 랴오동 반도를 넘겨주는 일을 가로막고 나선 삼국간섭이 일어난 다음에 일어났다. 그리고 2개월 뒤인 7월에 갑오개혁의 단행이 공포되고, 그로부터 1개월 뒤에 을미사변이 8월 20일에 발발하였다. 청일 전쟁의 패배로 청나라 세력이 물러나고 일본 세력도 삼국간섭으로 주춤하는 외적 조건 아래에서 고종이 독립과 개혁을 마음먹던 즈음 환구단을 건립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조선을 황제국으로 전환하려는 조치를 본격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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