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2-R5-0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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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가 있다면 무묘도 있어야지? 》 양성지가 주장했던 무묘

Story

양성지(梁誠之, 1415~1482)가 세조 2년에 주장한 무묘는 무성왕(武成王)을 모신 사당이었다. 그는 문무(文武)의 도(道)가 천경지위(天經地緯)와 같아서 어느 한쪽으로 편벽되게 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숙종이 태공(太公)을 높여서 무성왕으로 삼고 사당을 건립해 향사하였는데, 문선왕(文宣王)과 비등하게 하였으며 뒤에는 역대 양장(良將) 64인을 배향하였다. 조선에서는 선성 공자의 제사가 성균관에서부터 아래로 주군(州郡)에 이르러 시행되고 있으나, 무성왕은 사우(祠宇)가 없고, 단지 둑신(纛神) 4위(位)만을 제사지내고 있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이미 설립된 훈련관(訓鍊觀)은 곧 송나라의 무학(武學)이다. 이에 양성지는 둑소(纛所)를 훈련관에 병합하고 무성왕묘를 세워서, 제례와 배식(配食)을 문묘의 제도에 따라 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 무묘에 배향되는 인물들로는  신라의 김유신을 비롯하여, 고구려의 을지문덕, 고려의 유금필·강감찬·양규·윤관·조충·김취려·김경손·박서·김방경·안우·김득배·이방실·최영·정지, 조선의 하경복·최윤덕 등을 천거하였다. 그러나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대신 둑제의 위상을 높여 석전제와 동등하게 하고자 하였는데, 그 한 사례로서 세조 6년에, 석전제와 둑제의 음복주에 쓸 쌀의 양을 7석으로 동등하게 하는 법식을 제정한 것이다. 이전의 둑제에 사용된 양은 5석5두였다. 둑제에 관한 의식이 『국조오례의』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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