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순(朴齊純). 1858~1916. 대한제국기의 ‘을사오적’ 중 한 사람. 러일전쟁 후 일본이 추진하는 한국에 대한 보호조약에 일본 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와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을사오적’으로 지탄받았다. 그후 의정부 참정대신으로 친일내각수반이 되었다. 1909년 2월 내부대신으로 입각하고, 12월에는 임시서리 내각총리대신에 임명되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장례식에 맞춰 장충단에서 관민추도회를 발의했고, 그를 기리는 송덕비건의소 찬성원을 맡았다. 1910년 4월 이완용, 조중응 등의 주도로 한일합방 찬성운동을 벌이는 정우회(政友會)에 후원금 금화 200환을 기부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내부대신으로 ‘합병조약’ 체결에 참석해 가결함으로써 ‘경술국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일본 정부에서 주는 자작 작위를 받았고 조선총독 자문기구인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