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10월 28일에 거행된 명성황후의 발인행렬을 그린 반차도.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에 실린 두 종류의 반차도 가운데 하나이다. 어람용 의궤(奎 13880)의 반차도는 총 78면으로 분상용인 정족산성본(奎13883) 보다 2면이 더 많다. 황제국 선포 후 치러진 첫 번째 국장으로 길의장 행렬에 황후의 의장 70쌍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명성황후의 국장은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으로 시해를 당한 이후 정국의 혼란 속에서 일곱 번이나 연기되었다. 고종은 1895년 12월 28일 아관파천 후 1897년 1월 19일 덕수궁으로 환궁하여 국장 준비를 재개하였다. 장서각에는 최고급 종이에 어람용 의궤 반차도 <빈전이봉경운궁시반차도>과 <명성황후발인반차도>를 필사한 후 한 책으로 장황한 것으로 추정되는 선장본(線裝本) 1책이 소장되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도 두루마리 형태의 <명성황후발인반차도>가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