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왕후를 황후로 책봉하면서 금보와 함께 올린 것이다. 종래의 옥으로 제작했던 것을 황제국에 합당하게 금으로 제작하였다. 고종은 광무1년(1897)에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국의 위상에 맞는 체제를 정비했다.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이후에 황후와 황태자, 황태자비를 책봉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명성황후는 그 이전인 1895년 을미사변으로 승하하였으나 이 때 황후로 책봉되면서 금보와 금책이 제작되었다. 금책에는 황후로서의 명성황후가 갖추었던 덕과 품성, 명철하고 장엄한 모습, 국모로서의 공적과 함께 금책을 제작하게 된 명분이 새겨져 있다. 명성왕후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시해되었으나, 1897년(광무 원년) 10월 황후로 책봉되었고 다음달인 11월에 양주 천장산(天藏山) 아래 모셔 능호를 홍릉(洪陵)이라 하였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경기도 남양주시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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