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오례 산뢰
Definition
조선시대의 각종 국가·왕실 의례에서 사용된 제기. 술이나 물을 담는 큰 항아리이다. 산에 구름이 낀 형세를 몸체에 새기거나 그려 넣은 술동이. 산준은 고대로부터 국가 제례에서 중요하게 사용된 6종의 준(尊) 중 한 종류이다. ‘산뢰(山罍)’라는 별칭으로 보다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에, 6준은 실제로는 5준 1뢰를 의미한다. ‘뢰(罍)’는 구름과 우레가 널리 혜택을 베푸는 것이 마치 왕의 은혜가 여러 신하들에게 두루 미치는 것과도 같다는 의미가 있었다. 이런 뜻으로 인해 산준보다는 ‘산뢰’로 많이 지칭되었다. [1]
『세종실록오례』 ◎ 산뢰(山罍) :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산뢰(山罍)는 산준(山尊)이다. 준(尊)에 새겨 그림을 그려서 산에 구름이 있는 형상을 만든다. 뇌(罍)라 이르는 것은, 구름과 우레가 널리 혜택을 베풂이 인군(人君)이 은혜를 여러 신하들에게 미치게 함과 같음을 취하여 형상한 것이다. 산뢰(山罍)는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준(尊)이다."고 하였고, 《주례도(周禮圖)》에 이르기를, "산에 구름이 있는 형상을 그려서, 한 개에는 현주(玄酒)를 채우고, 한 개에는 앙제(盎齊)를 채운다."고 하였다. ◎ 山罍 : 《禮書》云: "山罍, 山尊也。 刻而畫之, 爲山雲之形。 謂之罍者, 取象雲雷博施, 如人君下及諸臣。 山罍, 夏后氏之尊也。" 《周禮圖》云: "畫山雲形, 一盛玄酒, 一盛盎齊。"[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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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_산뢰 | Object | 물품 | 제기 |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_산뢰(山罍) | 세종실록오례_산뢰 | 世宗實錄五禮_山罍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세종실록오례_산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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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tional Attrib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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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세종실록오례_산뢰 |
이칭/별칭 | 산뢰, 산준 |
재질 | |
색상 | |
사용처 |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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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 | 세종실록오례_산뢰 | documents | ||
세종실록오례_산뢰 | 산뢰 | isVersionOf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산뢰(山罍)는 산준(山尊)이다. 준(尊)에 새겨 그림을 그려서 산에 구름이 있는 형상을 만든다. 뇌(罍)라 이르는 것은, 구름과 우뢰가 널리 혜택을 베풂이 인군(人君)이 은혜를 여러 신하들에게 미치게 함과 같음을 취하여 형상한 것이다. 산뢰(山罍)는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준(尊)이다.”고 하였고, 『주례도(周禮圖)』에 이르기를, “산에 구름이 있는 형상을 그려서, 한 개에는 현주(玄酒)를 채우고, 한 개에는 앙제(盎齊)를 채운다.”고 하였다. 禮書云山罍山尊也刻而畫之爲山雲之形謂之罍者取象雲雷博施如人君下及諸臣山罍夏后氏之尊也周禮圖云畫山雲形一盛玄酒一盛盎齊 [3] | 국사편찬위원회[2] |
세종실록오례_대준 | 세종실록오례_대준 | isRelatedTo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대준(大尊)은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가 8寸 1分, 입지름이 5寸 7分, 배지름이 6寸 1分, 굽지름이 3寸 8分, 깊이는 6寸 5分이다.”고 하였다. 『주례도(周禮圖)』에 이르기를, “추향(追享) · 조향(朝享) · 조천(朝踐)에 두 개의 대준(大尊)을 사용하니, 큰 입의 준(尊)인 것이다. 한 개는 현주(玄酒)를 채우고, 한 개는 예제(醴齊)를 채운다.”고 하였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태준(泰尊)은 우(虞)나라 순제(舜帝)의 준(尊)이다.”고 하였다. 釋奠儀云大尊通足高八寸一分口徑五寸七分腹徑六寸一分足徑三寸八分深六寸五分周禮圖云追享朝享朝踐用兩大尊大口尊也一盛玄酒一盛醴齊記云泰有虞氏之尊也 [4] | 국사편찬위원회[3] |
국조오례의_산뢰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말하기를, “산뢰(山罍)는 산준(山尊)이다. 새겨서 산과 구름 모양을 그린 것이다. 뇌(罍)라고 한 것은 구름과 우뢰가 널리 물건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것이, 마치 임금이 아래로 여러 신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과 같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산뢰는 하후씨(夏后氏)의 준(尊)이다.” 했다. ○『주례도(周禮圖)』에 말하기를, “산과 구름의 모양을 그린 것이다. 하나는 현주(玄酒)를 담고, 하나는 앙제(盎齊)를 담는다.” 했다. 禮書云山罍山尊也刻而畫之爲山雲之形謂之罍者取象雲雷慱施如人君下及諸臣山罍夏后氏之尊也○周禮圖云畫山雲形一盛玄酒一盛盎齊 [5] | 한국전통지식포탈[4] |
국조상례보편_산뢰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산뢰(山罍)[현주(玄酒)와 청주(淸酒)를 담는 것이다. 사계절이 동일하다. ○ 지금은 예주(醴酒)를 써서 청주(淸酒)를 대신한다]. 산뢰(山罍)[의궤(儀軌)에는 무게가 10斤으로 되어 있다]는 입지름이 5寸이고, 배지름은 7寸 4分이며, 깊이는 8寸 3分이다. 발지름은 5寸 4分이고, 족부까지 포함한 높이는 9寸 6分이다. 산(山)과 구름[雲]의 모양을 새긴다. 양 귀[耳]의 제도는 호준(壺尊)과 동일하다. 山罍[所以實玄酒淸酒者四時同○今用醴酒代淸酒]山罍[儀軌重十斤]口圓徑五寸腹圓徑七寸四分深八寸三分足徑五寸四分通足高九寸六分鏤山雲之形兩耳制同壺尊 [6] | 한국전통지식포탈[5] |
대한예전_산뢰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말하기를, “산뢰(山罍)는 산준(山尊)이다. 산과 구름을 새겨서 모양을 그린 것이다. 뇌(罍)라고 한 것은 구름과 우뢰가 널리 물건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것이, 마치 임금이 아래로 여러 신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과 같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산뢰는 하후씨(夏后氏)의 준(尊)이다.”라고 했다. ○『주례도(周禮圖)』에 말하기를, “산과 구름의 모양을 그린 것이다. 하나는 현주(玄酒)를 담고, 하나는 앙제(盎齊)를 담는다.”라고 했다. 禮書云山罍山尊也刻而畫之爲山雲之形謂之罍 者取象雲雷愽施如人君下及諸臣山罍夏后氏 尊也○周禮圖云畵山雲形一盛玄酒一盛盎齊 [7] | 한국전통지식포탈[6] |
종묘의궤_산뢰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산뢰(山罍)는 산준(山尊)이다. 새겨서 그려 산과 구름의 형상을 만든 것이다. 뇌(礨)라고 한 것은, 구름과 우뢰가 널리 베풀어지는 것이 임금의 덕이 여러 신하들에게 미치는 것과 같음을 취하여 상징한 것이다. 산뢰(山罍)는 하후씨(夏后氏 우(禹) 임금)의 준이다."라고 하였다. ○『주례도(周禮圖)』에 이르기를, "산과 구름의 형상을 그린 것이다. 하나는 현주를 담고, 하나는 앙제(盎齊)를 담는다."라고 하였다. 禮書云山罍山尊也刻而畫之爲山雲之形謂之罍者取象雲雷博施如人君下及諸臣山罍夏后氏之尊也○周禮圖云畫山雲形一盛玄酒一盛盎齊 [8] | 한국전통지식포탈[7] 규장각한국학연구원[8] |
사직서의궤_산뢰[9]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말하기를, “산뢰(山罍)는 산준(山尊)이다. 새겨서 산과 구름 모양을 그린 것이다. 산뢰는 하후씨(夏后氏)의 준(尊)이다.”라고 하였다. 禮書云山罍山尊也刻而畫之爲山雲之形夏后氏之尊也 [10] | 한국전통지식포탈[9] 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 |
제기도감의궤_산뢰[11]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주조하며 102개이다. 입 지름은 4寸 2分, 발 지름은 4寸 6分, 깊이는 9寸 5分, 발까지 합한 높이는 8寸 8分, 배 지름은 6寸 5分 5리, 횡간의 무게는 3斤 10兩인데 성형(成形)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5斤을 정입(正入)하였다. 주성(鑄成)할 때 황랍(黃蠟)으로 모형을 떠서 용주(鎔鑄)하였기 때문에 매 1개당 황랍이 6兩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황랍 13兩으로 1개의 모형을 만들어 포토(浦土) 안에 정착(精着)하여 그림 모양이 분명해지도록 한 다음 그 모형을 도로 꺼내어 주조하였으므로 황랍 13兩을 소융(消融)하지 않았다. 사직(社稷) 8개, 영녕전(永寧殿) 16개, 종묘(宗廟) 18개, 각 능(各陵)에 60개이다. 鑄一百二口徑四寸二分足徑四寸六分深九寸五分通足高八寸八分腹徑六寸五分五釐橫首重三斤十兩而不能成形故今正入五斤鑄成時以黃蠟作形樣而鎔鑄故每一黃蠟六兩今則以黃蠟十三兩作一形樣精着於浦土中使畵格分明之後還出其形樣而鎔鑄故十三兩亦不至消融社稷八永寧殿十六宗廟十八各陵六十 [12] | 한국전통지식포탈[10]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산뢰(山罍)는 조선시대의 왕실의 제사 때 술을 담는 항아리로 사용하였다. 사직(社稷) 8개, 영녕전(永寧殿) 16개, 종묘(宗廟) 18개, 각 능(各陵)에 60개이다. |
경모궁의궤_산뢰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산뢰(山罍)는 산준(山尊)이다. 산과 구름 그림을 새겨 넣은 것이다. 산뢰는 하우씨(夏后氏)의 준이다.”라고 하였다. 禮書云山罍山尊也刻而畵之爲山雲之形夏后氏之尊也 [13] | 한국전통지식포탈[11] |
정조국장도감의궤[14]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4, 별공작> 산뢰(山罍) 3坐는 합한 무게 50斤 8兩이며 놋쇠[鍮]와 주철[鑄]을 반씩 섞는다. 山罍三坐合重五十五斤八兩鍮鑄相半 [15] | 한국전통지식포탈[12] 조선후기 1800년(순조 즉위년) 정조(正祖)의 국장(國葬) 때, 산뢰(山罍)는 현주(玄酒)와 청주(淸酒)를 담는 항아리로 사용하였다. |
정조국장도감의궤_산뢰[16]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3, 삼방 제기질> 한국전통지식포탈에서 검색 안 됨. AKS Encyves 가이 이미지 있음.[17] | AKS Encyves[13] |
순조국장도감의궤_산뢰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AKS Encyves[14] |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_산뢰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AKS Encyves[15]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산뢰[18] | 세종실록오례_산뢰 | isRelatedTo | AKS Encyves[16] | |
대준 | 산뢰 | isRelatedTo | 규장각한국학연구원[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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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청화철화삼산뇌문 산뢰 | 삼성미술관 리움[20] | currentLocation | <문화재청 보물 지정번호제1056호>[2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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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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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산뢰 |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22 | |
도설 | 국조오례의 | 산뢰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산뢰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572&category=A&sWord=산뢰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산뢰 |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pageNo=1&pageSize=&keyword=산뢰&target=CRA |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산준(山尊)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53 | |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산뢰(山罍)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산뢰&ridx=0&tot=4 | |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백자 청화철화삼산뇌문 산뢰(白磁靑畵鐵畵三山雷文山罍)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6884 |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산준(山尊)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산준(山尊) | |
참고 | AKS Encyves | 산뢰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산뢰 | |
도해 | 세종실록오례 | 산뢰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8b02.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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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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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 조선시대사학회, 2011. | ||
박수정, |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 조선시대사학회, 2012. | ||
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최순권, | 「조선시대 이준(彛尊)에 대한 고찰」, 『생활문물연구』14, | 국립민속박물관, 2004. | ||
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
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
김종임, |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 한국미술사학회, 2013. | ||
손명희, |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
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윤방언, | 『조선왕조 종묘와 제례』, | 문화재청, 2002. | ||
국립고궁박물관, |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 국립고궁박물관, 2014. | ||
궁중유물전시관, | 『종묘대제문물』,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Notes
- ↑ 박봉주, "산뢰",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online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박봉주, "산준(山尊)",『조선왕조실록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세종실록』,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산뢰.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산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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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산뢰",『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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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대준",『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山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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