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㽅)은 국가 제사 때 대갱(大羙)을 담는 제기이다. 중국 송나라 철종 때 진상도(陳祥道)가 편찬한 『예서(禮書)』에는 ‘등(登)은 와두(瓦豆)이다. 『의례(儀禮)』에는 ‘등(鐙)’ 자를 썼으니, 그것은 대갱을 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등은 국을 담는 형(鉶)과 짝을 이루어 둘은 각각의 제사에서 동일 수량으로 진설되었는데, 등에는 조미하지 않은 담박한 국인 대갱을 담았고, 형에는 간을 하여 오미(五味)의 맛을 낸 화갱(和羹)을 담았다.[1] 『국조오례의』 ◎ 두(豆) : 진씨(陳氏)註 001의 『예서(禮書)』에서 말했다. “등(登)은 와두(瓦豆)이다. 『의례(儀禮)』에는 ‘등(㽅)’이라 했으니, 대갱(大羹) 註 002을 담는 것이다.”
註 001 진상도(陳祥道) : 복주(福州) 사람으로 자는 용지(用之)이다. 송 영종 치평 4년(1067)에 진사(進士)로 급제하였으며, 원우(元祐, 1086-1094) 중에 태상박사(太常博士)가 되었고, 비서성정사(秘書省正字)로 마쳤다. 경학을 공부한 그는 삼례(三禮)의 학문에 뛰어났으며, 그가 찬술한 150권의 『예서(禮書)』는 대대로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중국역대인명사전』).
註 002 대갱(大羹) : 대갱(大羹)은 소금과 채소로 조미하지 않은 육즙이다(『禮記』 「樂記」. “大饗之禮,尚玄酒而俎腥魚,大羹不和,有遺味者矣【大羹,肉湆,不調以鹽菜.】.”). ◎ 㽅 : 〈圖〉 陳氏『禮書』云。“登瓦豆也。” 註 001 『儀禮』作㽅 註 002, 其實大羹。 註 003
註 001 『禮書』 卷101, 「禮書圖·籩」. “木豆爲之豆, 竹豆爲之籩, 瓦豆爲之登.”
註 002 『儀禮』에는 ‘㽅’이 아닌 ‘鐙’으로 나와 있다(『儀禮』 「公食大夫禮」. “大羹湆不和,實于鐙. 宰右執鐙…【瓦豆謂之鐙.】.”).
註 003 『禮書』 卷101, 「禮書圖·登」. “登瓦器也. 儀禮作鐙, 則登亦金爲之, 其實大羹.”[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