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073 항목
Definition
보(簠)는 제사 때 도(稻)와 양(梁)을 담아 놓는 제기이다.[1]
『국조오례의』 ◎ 보(簠) : 『석전의』에서 말했다. “보(簠)는 구리로 주조한다. 뚜껑을 포함한 무게는 13근 2냥이요, 뚜껑까지의 높이는 7촌, 깊이는 2촌, 너비는 8촌 1푼이며, 복경(腹徑: 복판(腹板)의 직경)의 길이는 1척 1푼이다.”뒤에서 무게를 말하는 것은 모두 구리 종류이다.
◎ 簠 : 〈도〉 『釋奠儀』云。“簠, 用銅鑄造。倂蓋重一十三斤二兩, 通蓋高七寸, 深二寸, 闊八寸一分, 腹徑長一尺一分。” 註 001後凡言重者, 皆銅屬。
註 001 『紹熙州縣釋奠儀圖』 「禮器圖·簠」. “簠, 倂蓋重一十三斤二兩. 通蓋高七寸, 深二寸, 濶八寸一分, 腹徑長一尺一分.”[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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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_보 | Object | 물품 | 제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_보(簠) | 국조오례의_보 | 國朝五禮儀_簠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국조오례의_보 | 한국전통지식포탈[1] |
Additional Attrib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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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국조오례의_보 |
이칭/별칭 | 보, 보개구(簠蓋具) |
재질 | 銅 |
색상 | |
사용처 |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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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 | 국조오례의서례:길례:제기도설:보 | hasPar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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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_보 | 보 | type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國朝五禮序例』(奎185-v.1-2) 0001권, 044a-044a면>『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보(簠)는 동(銅)을 써서 주조(鑄造)하는데, 뚜껑을 합친 무게가 13斤 2兩이요, 뚜껑까지의 높이는 7寸이다. 깊이는 2寸이요, 넓이는 8寸 1分이며, 배지름[腹徑]은 1尺 1分이다. [뒤에 무게를 말한 것은 모두 동(銅)의 등속이다.]” 했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幷盖重一十三斤二兩通盖高七寸深二寸濶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後凡言重者都銅屬][3] | 한국전통지식포탈[2] |
국조오례의_궤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궤(簋)는 뚜껑을 합친 무게가 9斤이요, 뚜껑까지의 높이는 6寸 7分이다. 너비는 5寸이며, 배지름[腹徑]은 7寸 9分이요, 너비는 5寸 6分이다."고 했다. ○『주례(周禮)』의 주(注)에 "보(簠)는 모지고, 궤(簋)는 둥글다."고 했다. 釋奠儀云簋幷盖重九斤通盖高六寸七分深二寸八分濶五寸腹徑長七寸九分濶五寸六分○周禮注方簠圓簋][4] | 한국전통지식포탈[3] |
세종실록오례_보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보(簠)는 구리를 사용하여 주조하였는데, 뚜껑까지 합한 무게가 13斤 2兩, 뚜껑까지 전체의 높이는 7寸, 깊이는 2寸, 속의 너비는 8寸 1分, 배지름은 1尺 1分이다.”고 하였다.[지금 상고하건대, 무게를 말하는 것은 모두 구리를 사용한 것이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幷蓋重一十三斤二兩通蓋高七寸深二寸闊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今按後凡言重者皆用銅][5] | 국사편찬위원회[4] |
국조오례의_멱 | 국조오례의_보 | goesWith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삼례도(三禮圖)에 보면 베의 폭을 2尺 2寸으로 하고 둥글게 했는데, 지금은 베 한 폭을 모나게 해서 만든다.” 했다. ○『주례도(周禮圖)』에 말하기를, “팔준(八尊)은 천지(天地)에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소포건(疏布巾)을 씀은 질(質)을 좋게 하는 것이요, 육이(六彝)는 종묘(宗廟)에 강신(降神)하는 것이기 때문에 포건(布巾)을 정(精)한 것을 쓴다. 구름을 그려 무늬를 만드는 것이나 특생멱(特牲羃)은 모두 갈포(葛布)를 쓴다.” 했다. 釋奠儀云三禮圖布之幅二尺有二寸而園之今以布一幅取方爲之○周禮圖云八尊獻天地故用䟽布巾尙質也六彝裸宗廟故用布巾之精者其畫雲爲文與特牲羃皆用綌 [6] | 한국전통지식포탈[5] |
국조오례의비-匕 | 국조오례의_보 | goesWith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비(匕)의 길이는 3尺, 혹은 5尺이다. 서직(黍稷)에 쓰는 비(匕)가 있고, 생체(牲體)에 쓰는 비(匕)가 있으며 소비(䟽匕)가 있다. 이 삼비(三匕)는 극목(棘木)으로 만든다. 늠인(廩人)이 서직(黍稷)을 평미레[平木]하는 비(匕)가 있고, 옹인(雍人)이 생체(牲體)를 뜨는 비(匕)가 있다. 생체(牲體)에 쓰는 비(匕)는 도비(挑匕)이다. 그 제도는 서직(黍稷)에 쓰는 비(匕)는 도비(挑匕)보다 작고, 도비(挑匕)는 소비(疏匕)보다 작다. 유사(有司)가 물러가면 사마(司馬)가 두 손으로 도비의 자루를 잡고 국을 떠서 소비에 붓는데 이렇게 세 번을 한다. 도비로 뜬 뒤에 소비에 붓기를 세 번 한다면 소비는 큰 것이다. 禮書云匕長三尺或五尺有黍稷之匕有牲體之匕有䟽匕三匕以棘廪人之摡黍稷之匕也雍人之所摡牲體之匕也牲體之匕挑匕也其制則黍稷之匕小於挑匕挑匕小於䟽有司徹司馬以二手執挑匕柄以挹湆注于䟽匕若是者三挹之以挑匕然後注于䟽匕者三則䟽匕大矣 [7] | 한국전통지식포탈[6] |
국조상례보편_보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발인(發引)> 보(簠)는 백토(白土)를 구워서 만든다. 입구의 길이는 2寸 7分이고 너비는 2寸이다. 배 부분의 길이는 3寸이고, 뚜껑[盖]을 포함한 높이는 3寸이다. 簠用白土燔造口長二寸七分濶二寸腹長三寸通盖高三寸[8] | 한국전통지식포탈[7] |
춘관통고_보[9]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春官通考』(奎12272) 권12 「吉禮·原儀諸器圖說」 010면>[10] | 규장각한국학연구원[8]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 보(簠)는 왕실(王室)의 국장(國葬) 때 부장하던 명기(明器)의 하나이다. |
춘관통고_보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보(簠)는 백토(白土)를 구워서 만든다. 입지름은 2寸 7分이고 너비는 2寸이다. 배 부분의 길이는 3寸이고, 뚜껑[蓋]을 포함한 높이는 3寸이다. 簠用白土燔造口長二寸七分濶二寸腹長三寸通蓋高三寸[11] | 한국전통지식포탈[9] |
대한예전_보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보(簠)는 동(銅)을 써서 주조(鑄造)하는데, 뚜껑을 합친 무게가 13斤 2兩, 뚜껑까지의 높이는 7寸이다. 깊이는 2寸, 너비는 8寸 1分, 배지름은 1尺 1分이다. [뒤에 무게를 말한 것은 모두 동(銅)의 등속이다.]”라고 했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幷盖重一十三斤二兩通盖高七寸湥二寸闊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後凡言重者皆銅屬] [12] | 한국전통지식포탈[10] |
종묘의궤_보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석전의』에 이르기를, 보(簠)는 구리[銅]로 주조한다. 뚜껑까지 합한 무게는 23斤 2兩, 뚜껑까지 합한 높이는 7寸, 깊이는 2寸, 너비는 8寸 1分이고, 복판의 지름으로 긴 쪽은 1尺 1分이다. [뒤에 무게를 말한 것은 모두 구리 따위이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幷蓋重二十三斤二兩通蓋高七寸深二寸闊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後凡言重者皆銅屬][13] | 규장각한국학연구원[11] |
사직서의궤_보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보(簠)는 구리[銅]를 써서 주조(鑄造)하는데, 뚜껑을 합친 무게가 13斤 2兩, 뚜껑까지의 높이는 7寸이다. 깊이는 2寸, 너비는 8寸 1分, 배지름은 1尺 1分이다. [뒤에 무게를 말한 것은 모두 구리[銅]의 등속이다.]”라고 했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竝蓋重一十三斤二兩通蓋高七寸㴱二寸闊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後凡言重者皆銅屬][14] | 한국전통지식포탈[12] |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_보[15]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주철로 만든다.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보(簠)는 주철(鑄鐵)과 납(鑞)으로 주조하여 만든다. 뚜껑을 포함한 높이는 7寸, 깊이는 2寸, 넓이는 8寸 1分, 복판 둘레의 지름은 1尺 1分이다." 라고 하였다. 무게에 대해 말한다면 주조할 때 적정 수량에 꼭 맞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 그 중량을 기록하지 않는다. 사직(社稷)에는 매 신위마다 각각 2개씩 총 8개 놓고, 종묘(宗廟)에는 매 방마다 각각 4개씩, 6실, 7실, 8실에는 각각 2개씩 더하여 총 46개 놓으며, 영녕전(永寧殿)에는 매 방마다 각각 4개씩 총 24개 놓는다. 횡간(橫看)의 무게는 12斤 8兩이다. 鑄鐵釋奠儀云簠用鑄鐵和鑞鑄造通蓋高七寸深二寸闊八寸一分腹經長一尺一分若其重則鎔鑄之際未能盡合於數故今不錄重數社稷每位各二總八宗廟每室各四六七八室各加二總四十六永寧殿每室各四總二十四橫看重十二斤八兩 [16] | 한국전통지식포탈[13] |
경모궁의궤_보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보(簠)는 구리(銅)로 주조한다. 뚜껑까지 합한 무게는 13斤 2兩이다. 뚜껑과 발까지 합한 높이는 7寸, 깊이는 2寸, 너비는 8寸 1分, 배지름은 긴쪽이 1尺 1分이다. 뒤에 무게를 말한 것은 모두 구리로 만든 것들이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竝蓋重一十三斤二兩通蓋高七寸深二寸闊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後凡言重者皆銅屬] [17] | 한국전통지식포탈[14] |
순조국장도감의궤_보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한국전통지식포탈[15] | |
정조국장도감의궤_보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2, 이방 명기질> 보(簠) 1은 백토(白土)를 구워 만든다. 주둥이 길이는 2寸 7分, 넓이 2寸, 배[腹]의 길이 3寸, 덮개[蓋]를 포함한 높이는 3寸이다. 사옹원(司饔院)에서 마련한다. ○ 주척(周尺)을 사용한다. 簠一用白土燔造口長二寸七分闊二寸腹長三寸通蓋高三寸司饔院○用周尺[18] | AKS Encyves[16]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_보 | 국조오례의_보 | isRelatedTo | AKS Encyves[17]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보[19] | 국조오례의_보 | documents | AKS Encyves[18] | |
궤 | 보 | isRelatedTo | AKS Encyves[19] | |
비-匕 | 국조오례의_보 | goesWith | AKS Encyves[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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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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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보 | http://sillok.history.go.kr/id/wda_20002008_003 | |
도설 | 국조오례의 | 보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보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506&category=A&sWord=簠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보 |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33 |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보(簠)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375 | |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보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보&ridx=3&tot=3505 |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보(簠)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보(簠) | |
참고 | AKS Encyves | 보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보(그릇) | |
도해 | 세종실록오례 | 보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6a03.jpg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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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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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국립고궁박물관, |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 국립고궁박물관, 2014. | ||
궁중유물전시관, | 『종묘대제문물』,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Notes
- ↑ 이문주, "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豆,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권1, 길례(吉禮), 제기(祭器)의 도설(圖說), 보(簠),『조선시대법령자료』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簠,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의서례』 1권, 길례 제기도설, 보,『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簋,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의서례』 1권, 길례 제기도설, 궤,『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보,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보",『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羃,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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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의서례』 1권, 길례 제기도설, 비,『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발인(發引), 보,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춘관통고",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춘관통고』 12권, 길례 원의제기도설, 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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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대한예전』 3권, 길례 제기도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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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 1권, 도감(都監), 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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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2, 이방 명기질, 보,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한국 기록유산 Encyves』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