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고종 24) 1월에 고종(高宗 1852~1919)이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팔순을 축하하는 궁중연향(宮中宴享)인 진찬(進饌)을 거행하였다.
의례가 있을 때는 직무분장(職務分掌)에 따라 궁녀를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으며 착용하는 복색을 달리하였다.[1] 문외의장(門外儀仗) 봉지비자(奉持婢子)는 가리마(加里麻)를 쓰고 초록당의(草綠丹衣)와 남색치마(藍色裳)를 입으며 흰색한삼[白紬汗衫]을 드리우고 흑혜(黑鞋)를 신었다.[2] 또한 머리에는 수공화(首拱花)를 꽂는데, 수파련(水波蓮)과 내하(內下)한 당가화(唐假花) 이지(二枝)를 더하여 사용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