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오례의 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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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8일 (수) 14:37 판
Definition
등(㽅)은 국가 제사 때 대갱(大羙)을 담는 제기이다. 중국 송나라 철종 때 진상도(陳祥道)가 편찬한 『예서(禮書)』에는 ‘등(登)은 와두(瓦豆)이다. 『의례(儀禮)』에는 ‘등(鐙)’ 자를 썼으니, 그것은 대갱을 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등은 국을 담는 형(鉶)과 짝을 이루어 둘은 각각의 제사에서 동일 수량으로 진설되었는데, 등에는 조미하지 않은 담박한 국인 대갱을 담았고, 형에는 간을 하여 오미(五味)의 맛을 낸 화갱(和羹)을 담았다.[1]
『국조오례의』 ◎ 두(豆) : 진씨(陳氏)註 001의 『예서(禮書)』에서 말했다. “등(登)은 와두(瓦豆)이다. 『의례(儀禮)』에는 ‘등(㽅)’이라 했으니, 대갱(大羹) 註 002을 담는 것이다.”
註 001 진상도(陳祥道) : 복주(福州) 사람으로 자는 용지(用之)이다. 송 영종 치평 4년(1067)에 진사(進士)로 급제하였으며, 원우(元祐, 1086-1094) 중에 태상박사(太常博士)가 되었고, 비서성정사(秘書省正字)로 마쳤다. 경학을 공부한 그는 삼례(三禮)의 학문에 뛰어났으며, 그가 찬술한 150권의 『예서(禮書)』는 대대로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중국역대인명사전』).
註 002 대갱(大羹) : 대갱(大羹)은 소금과 채소로 조미하지 않은 육즙이다(『禮記』 「樂記」. “大饗之禮,尚玄酒而俎腥魚,大羹不和,有遺味者矣【大羹,肉湆,不調以鹽菜.】.”).
◎ 㽅 : 〈圖〉 陳氏『禮書』云。“登瓦豆也。” 註 001 『儀禮』作㽅 註 002, 其實大羹。 註 003
註 001 『禮書』 卷101, 「禮書圖·籩」. “木豆爲之豆, 竹豆爲之籩, 瓦豆爲之登.”
註 002 『儀禮』에는 ‘㽅’이 아닌 ‘鐙’으로 나와 있다(『儀禮』 「公食大夫禮」. “大羹湆不和,實于鐙. 宰右執鐙…【瓦豆謂之鐙.】.”).
註 003 『禮書』 卷101, 「禮書圖·登」. “登瓦器也. 儀禮作鐙, 則登亦金爲之, 其實大羹.”[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
국조오례의_등 | Object | 물품 | 제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_등(㽅) | 국조오례의_등 | 國朝五禮儀_㽅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국조오례의_등 |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
id | 국조오례의_등 |
이칭/별칭 | 등개구(㽅蓋具) |
재질 | |
색상 | |
사용처 |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
Contextual Relations
Spatial Data
Spatial Information Nodes
gid | region | label | hanja | latitude | longitude | altitue | descrip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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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ti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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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Online Referen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등 | http://sillok.history.go.kr/id/wda_20002008_005 | |
도설 | 국조오례의 | 등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등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339&category=A&sWord=등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등 | 『사직서의궤』는 등 항목 없음 |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34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등(㽅)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368 |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등(鐙)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등(鐙) | |
참고 | 한국 기록유산 Encyves | 등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등 | |
도해 | 세종실록 오례 | 등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6b01.jpg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 조선시대사학회, 2011. | ||
박수정, |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 조선시대사학회, 2012. | ||
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최순권, | 「조선시대 이준(彛尊)에 대한 고찰」, 『생활문물연구』14, | 국립민속박물관, 2004. | ||
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
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
김종임, |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 한국미술사학회, 2013. | ||
손명희, |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
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국립고궁박물관, |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 국립고궁박물관, 2014. | ||
궁중유물전시관, | 『종묘대제문물』,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