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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__NOTOC__ ==Definition== 조선시대 종묘에서 거행하는 국가적 제사 때 조상에게 바칠 술잔을 담는 죽작비(竹爵篚)나 폐백(幣帛)을 담는 죽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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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6일 (월) 20:32 기준 최신판
Definition
조선시대 종묘에서 거행하는 국가적 제사 때 조상에게 바칠 술잔을 담는 죽작비(竹爵篚)나 폐백(幣帛)을 담는 죽건비(竹巾篚)를 33개 만들어 사용한다. [1]
『세종실록오례』 ◎ 비(篚) :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비(篚)는 대나무로써 만들었는데,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는 5촌, 길이는 2척 8촌, 속의 너비는 5촌 2푼, 깊이는 4촌, 뚜껑[蓋]의 깊이는 2촌 8푼이다. 음식물을 올리는 데 사용하며, 마디[節]가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 篚 : 《釋奠儀》云: "篚以竹爲之。 通足高五寸, 長二尺八寸, 闊五寸二分, 深四寸, 蓋深二寸八分。 用於薦物而有節焉者也。"[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
세종실록오례_비 | Object | 물품 | 제기 |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_비(篚) | 세종실록오례_비 | 世宗實錄五禮_篚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세종실록오례_비 |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
id | 세종실록오례_비 |
이칭/별칭 | 비개구, 폐비 |
재질 | 대나무 |
색상 | |
사용처 |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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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실록오례 | 세종실록오례:길례서례:제기도설:비 | hasPart | ||
세종실록오례:길례서례:제기도설:비 | 세종실록오례_비 | documents | ||
세종실록오례:길례서례:제기도설:비 | 석전의 | references | ||
세종실록오례_비 | 비 | type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비(篚)는 대나무[竹]로써 만들었는데,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는 5寸, 길이는 2尺 8寸, 속의 너비는 5寸 2分, 깊이는 4寸, 뚜껑[蓋]의 깊이는 2寸 8分이다. 음식물을 올리는 데 사용하며, 마디[節]가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釋奠儀云篚以竹爲之通足高五寸長二尺八寸闊五寸二分深四寸蓋深二寸八分用於薦物而有節焉者也 [3] | 국사편찬위원회[2] |
국조오례의_비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비(篚)는 대나무로 만드는데, 발까지 합하여 높이가 5寸이요, 길이는 2尺 8分이며, 너비는 5寸 2分이다. 깊이는 4寸이요, 뚜껑의 깊이는 2寸 8分이다. 물건을 받치는 데 쓰며, 마디가 있는 것이다.” 했다. 釋奠儀云篚以竹爲之通足高五寸長二尺八分闊五寸二分深四寸盖深二寸八分用於薦物而有節焉者也 [4] | 한국전통지식포탈[3] |
국조상례보편_비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비(篚)는 조선시대 왕실의 제사에서 술잔이나 폐백을 담는데 사용한다./ 비(篚)[작(爵)과 폐백[幣]을 담는 것이다]. 비(篚)는 대나무[竹]를 엮어서 만든다. 길이는 2尺 8分, 너비는 5寸 2分, 깊이는 4寸이다. 족부까지 포함한 높이는 5寸이다. 뚜껑[蓋]의 깊이는 2寸 8分이다. 篚[所以盛爵幣者]篚用竹編造長二尺八分濶五寸二分深四寸通足高五寸蓋深二寸八分 [5] | 한국전통지식포탈[4] |
대한예전_비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비(篚)는 대나무로 만드는데, 발까지 합하여 높이가 5寸, 길이는 2尺 8分, 너비는 5寸 2分이다. 깊이는 4寸, 뚜껑의 깊이는 2寸 8分이다. 물건을 받치는 데 쓰며, 마디가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釋奠儀云篚以竹爲之通足高五寸長二尺八寸濶五寸二分深四寸盖湥二寸八分用於薦物而有節焉者也 [6] | 한국전통지식포탈[5] |
종묘의궤_비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비(篚)는 대나무로 만든다. 발까지 합한 높이는 5寸, 너비는 5寸 2分, 깊이는 4寸이다. 뚜껑의 깊이는 2寸 8分이다. 음식물을 올리는 데 사용하는데, 마디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篚以竹爲之通足高五寸長二尺八分闊五寸二分深四寸蓋深二寸八分用於薦物而有節焉者也 [7] | 한국전통지식포탈[6] 규장각한국학연구원[7] |
사직서의궤_비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비(篚)는 대나무로 만드는데, 발까지 합하여 높이가 5寸, 길이는 2尺 8分, 너비는 5寸 2分이다. 깊이는 4寸, 뚜껑의 깊이는 2寸 8分이다. 물건을 받치는 데 쓰며, 마디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篚以竹爲之通足高五寸長二尺八分闊五寸二分深四寸蓋深二寸八分用於薦物而有節焉者也 [8] | 한국전통지식포탈[8] |
제기도감의궤_비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죽작비(竹爵篚)와 죽건비(竹巾篚)는 33개이다. 발까지 합한 높이는 5寸, 길이는 2尺, 너비는 5寸 2分, 깊이는 4寸, 뚜껑의 깊이는 2寸 8分이다. 竹爵巾篚幷三十三通足高五寸長二尺闊五寸二分深四寸蓋深二寸八分 [9] | 한국전통지식포탈[9] |
선조의인왕후부묘도감의궤_비[10]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선조의인왕후부묘도감의궤 권2, 3방의궤> 비(篚)는 총 셋이다. 그 중 작비(爵篚)는 둘, 폐비(幣篚)는 하나이다. 덮개[蓋]를 갖춘다. 비(篚)는 대나무[竹]로 만든다. 다리까지 포함한 높이 5寸, 길이는 2尺 8分, 너비는 5寸 2分, 깊이 4寸, 덮개[蓋] 2寸 8分이다. 변(籩)과 비(篚)에 들이는 것은 해장죽(海長竹) 150箇, 오죽(烏竹) 2箇, 중죽(中竹) 3箇이다. 변(籩) 19口에는 다리를 붙인다. 전칠(全漆) 1合 2夕, 송연(松煙)과 아교(阿膠)는 각각 1兩, 찌꺼기 없앤 설면자(雪綿子) 5錢, 백정포(白正布) 수건(手巾) 1尺, 준(樽) 10方, 면변(冪籩) 19이다. 멱(冪)을 두르는데 들이는 것은 매 하나마다 흑저포(黑苧布) 5寸, 홍저포(紅苧布) 5寸씩, 홍저포(紅苧布)와 흑저포(黑苧布) 각각 11尺 5寸이다. 흑저사(黑苧絲) 1里이다. 매 길이마다 대나무[竹] 3箇이다. 篚總三內爵篚二幣篚一蓋具篚以竹爲之通足高五寸長二尺八分闊五寸二分深四寸蓋二寸八分以上籩篚所入海長竹一百五十箇烏竹二箇中竹三箇籩十九口足着全漆一合七夕松煙阿膠各一兩去滓雪綿子五錢白正布手巾一尺樽十方冪籩十九圓冪所入每一黑苧布五寸紅苧布內掑五寸式都入紅黑苧布各十一尺五寸黑苧絲一里海長竹三箇 [11] | 조선중기 1610년(광해군2) 선조(宣祖)와 의인왕후(懿仁王后)의 신주(神主)를 종묘(宗廟)로 부묘(祔廟)할 때 비(篚)는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제기(祭器)이다. |
인조인렬왕후부묘도감의궤_비[12]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인조인렬왕후부묘도감의궤 권2, 2방의궤> 비(篚)는 셋이다. 2개는 작비(爵篚), 하나는 폐비(幣篚)로 들인다. 비(篚)는 대나무로 만들었는데 발[足]까지 포함한 높이 11寸, 길이 2尺 8分, 너비 5寸 2分, 깊이 4寸, 덮개의 깊이는 2寸 8分이다. 이상 변비(籩篚)에 든 것은 해장죽(海長竹) 150介, 오죽(烏竹) 2介, 중죽(中竹) 3介이다. 변자와 아가리[籩口]와 발에는 전칠(全漆) 2合을 칠하고, 송연(松煙), 아교(阿膠) 각각 1兩이다. 거설면자(去雪綿子) 5錢, 백정포(白正布) 수건(手巾) 1尺이다. 준방멱(樽方冪), 변원멱(籩圓冪)에 들인 것으로 매 하나마다 묵정포(墨苧布) 각각 7寸, 홍정포(紅苧布)와 안감[內拱]은 각각 5寸씩이고, 묵저사(墨苧絲) 1錢이다. 篚三內二爵篚一幣篚篚以竹爲之通足高十一寸長二尺八分潤五寸二分深四寸蓋深二寸八分以上籩篚所入海長竹一百五十介烏竹二介中竹三介籩口足着全漆二合松煙阿膠各一兩去雪綿子五錢白正布手巾一尺樽方冪籩圓冪所入每一墨苧布各七寸紅苧布內拱各五寸式墨苧絲一錢 [13] | 한국전통지식포탈[10] |
경모궁의궤_비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비(篚)는 대나무로써 만들었는데,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는 5寸, 길이는 2尺 8寸, 속의 너비는 5寸 2分, 깊이는 4寸, 뚜껑[蓋]의 깊이는 2寸 8分이다. 음식물을 올리는 데 사용하며, 마디[節]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篚以竹爲之通足高五寸長二尺八分闊五寸二分深四寸蓋深二寸八分用於薦物而有節焉者也 [14] | 한국전통지식포탈[11] 규장각한국학연구원[12] |
영조정성왕후진종효순왕후부묘도감의궤_비[15]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영조정성왕후진종효순왕후부묘도감의궤 권1, 2방의궤> 덮개를 갖춘 비(篚)는 6部이다. 여기에 든 것으로 해장죽(海長竹) 60箇, 오죽(烏竹) 12節, 생모시[生苧] 3錢이다. 篚蓋具六部所入海長竹六十箇烏竹十二節生苧三錢 [16] | 용도) 조선후기 1778년(정조 2) 영조(英祖)와 정성왕후(貞聖王后), 추존왕(追尊王)인 진종(眞宗)과 효순왕후(孝純王后)의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 비(篚)는 폐백(幣帛)을 담거나 술잔을 담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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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장도감의궤_비/폐비[17]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3, 삼방 제기질> 작비(爵篚) 3箇, 건비(巾篚) 3箇, 폐비(幣篚) 1箇에 들어가는 것으로 중죽(中竹) 2箇, 해장죽(海長竹) 78箇, 오죽(烏竹) 1箇이다. 복정한 것 중에서 취해서 사용한다. 모시실[苧絲] 2錢이다. 爵篚三箇巾篚三箇幣篚一箇所入中竹二箇海長竹七十八箇烏竹一箇卜定中取用苧絲二戔 [18] | 용도)조선후기 1800년(순조 즉위년) 정조(正祖)의 국장(國葬) 때, 비(篚)는 술잔 등을 담는 제기(祭器)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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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익종부묘도감의궤_비[19]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순조익종부묘도감의궤 권1, 3방의궤> 비(篚)는 뚜껑을 갖추어 4이다. 여기에 든 것은 오죽(烏竹) 8節, 해장죽(海長竹) 40箇, 생모시[生苧] 2錢이다. 篚蓋具四所入烏竹八節海長竹四十箇生苧二錢 [20] | 조선후기 1837년(헌종 3) 순조(純祖)와 추존왕인 익종(翼宗)의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 비(篚)는 조선시대 왕실의 제사에서 술잔이나 폐백(幣帛)을 담는데 사용하였다. |
헌종효현왕후부묘도감의궤_비[21]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헌종효현왕후부묘도감의궤 권2, 3방의궤> 비(篚)는 뚜껑[蓋具]을 갖추어 2이다. 여기에 든 것은 오죽(烏竹) 4節, 해장죽(海長竹) 20箇, 생모시[生苧] 1錢이다. 篚蓋具二所入烏竹四節海長竹二十箇生苧一錢 [22] | 조선후기 1851년(철종 2) 헌종(憲宗)과 효현왕후(孝顯王后)의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 비(篚)는 제사(祭祀) 지낼 때에 신위(神位)에게 드리는 폐백(幣帛) 따위의 물건(物件)을 담던 광주리로 사용하였다. |
철종부묘도감의궤_비[23]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철종부묘도감의궤 권1, 3방의궤> 비(篚)는 뚜껑은 갖추어 2이다. 여기에 든 것으로, 오죽(烏竹) 4節, 해장죽(海長竹) 20箇, 생모시[生苧] 1錢이다. 篚蓋具二所入烏竹四節海長竹二十箇生苧一錢 [24] | 조선후기 1866년(고종 3) 철종(哲宗)의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 비(篚)는 대나무로 만든 둥근 광주리로 술잔이나 폐백을 담는 제기(祭器)로 사용하였다. |
순조국장도감의궤_폐비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AKS Encyves[13] |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_폐비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AKS Encyves[14]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비[25] | 세종실록오례_비 | isRelatedTo | AKS Encyves[15] | |
세종실록오례_비 | 폐백(幣帛) | goesWit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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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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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비 |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08# | |
도설 | 국조오례의 | 비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비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542&category=A&sWord=篚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비개구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545&category=A&sWord=篚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비 |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32 |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폐비(幣篚)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0355 |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제기(祭器)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제기(祭器) | |
참고 | AKS Encyves | 비(광주리)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비(광주리) | |
도해 | 세종실록 오례 | 비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6b04.jpg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 조선시대사학회, 2011. | ||
박수정, |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 조선시대사학회, 2012. | ||
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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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
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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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명희, |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
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국립고궁박물관, |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 국립고궁박물관, 2014. | ||
궁중유물전시관, | 『종묘대제문물』,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Notes
- ↑ 『제기도감의궤』 1권, 도감(都監), 비 용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비,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비,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비",『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篚,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의서례』 1권, 길례 제기도설, 비,『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대한예전』 3권, 길례 제기도설,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종묘의궤』 1권, 종묘제기도설,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사직서의궤』 1권, 제기도설,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제기도감의궤』 1권, 도감(都監),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선조의인왕후부묘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선조의인왕후부묘도감의궤』 2권, 3방의궤,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인조인렬왕후부묘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인조인렬왕후부묘도감의궤』 2권, 2방의궤,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경모궁의궤』 1권, 제기도설,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영조정성왕후진종효순왕후부묘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영조정성왕후진종효순왕후부묘도감의궤』 1권, 2방의궤,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정조국장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3, 삼방 제기질,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순조익종부묘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순조익종부묘도감의궤』 1권, 3방의궤,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헌종효현왕후부묘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헌종효현왕후부묘도감의궤』 2권, 3방의궤,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철종부묘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철종부묘도감의궤』 1권, 3방의궤, 비,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한국 기록유산 Encyves』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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