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시정30년사 朝鮮総督府 施政三十年史
개설
조선박람회는 조선 내의 문화 향상 및 산업 발달 상태, 정치사회 및 기타 여러 분야의 사업을 한 곳에 전시하여 총독부 시정 20년에 해당하는 1929년(昭和 4) 가을에 개최했다. 이 사업은 과거 20년간 관민이 일치협력해서 쌓아 올린 실적을 내외에 천명해 장래의 진보에 도움이 되고, 또한 조선 외부에서 다수의 출품을 두루 받아서 내외의 비교를 통해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며 상호의 소개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또한 이 기회에 내외 관람자를 유치하여 조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구하고 서로 제휴하여 반도의 개발과 국운의 홍륭에 기여하고자 한 사업이었다. 이 계획은 1921년(大正 10)에 열린 산업조사회의 결의에 그 단초를 두었으며, 그 후 조선공업협회 공직자대회 등에서 그 기운이 촉진되어 마침내 1929년에 개최하게 되었다.
조선박람회의 준비는 1928년(昭和 3)부터 진행되어 그해 예산에 조선박람회 개최준비비 10만 원을 계상하고, 그해 5월 29일 '조선박람회준비위원규정'을 만들었다. 이어서 6월 6일 준비위원장 이하 준비위원을 임명해 실질적 준비에 돌입했다. 1929년 101만 2,500원의 예산을 성립하면서 총독부 주최 하에 조선박람회의 개최가 확정되었다. 더불어 앞서 말한 준비위원규정을 폐지하고 새롭게 '박람회사무장정'을 제정해 사무총장사무취급(당시 정무총감 결원)부장 이사 평의원 이하 필요한 직원을 임명해 진용을 정비하고 사무 수행을 도모했다.
이렇게 조선박람회는 그해 9월 12일에 개회하기로 결정되어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러데 아직 개회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인 그해 8월 17일 야마나시 총독이 의원면관되고 같은 날 사이토 총독이 임명되었다. 따라서 조선박람회는 제2차 사이토 총독 시기에 들어서 개최되었는데 실제 여러 준비는 야마나시 총독 재임 중에 성립했기 때문에 편의상 제 4기에 이를 서술한다.
실시와 성적
조선박람회의 예산은 수입 31만 2,500원, 지출 101만 2,500원이었는데, 여기에 1928년 준비비 10만 원, 경성부에서 제공한 여러 설비에 소요된 경비 25만 원을 포함해 도합 지출 총액은 136만 2,500원이었다. 그 밖에 경성협찬회 경비, 각 도협찬회 경비, 도지방비 등의 지출을 포함하면 지출 총액은 200만 원을 초과했다.
조선박람회의 장소는 구 경복궁과 여기에 밀접한 신무문 외에 합계 10만 여 평으로, 광화문을 정문으로 하고 신무문 밖에 후문을 신축했다. 건축물은 구 궁전 등을 이용하느 ㄴ것 외에 각 진열관 전부를 신축해서 합계 1만 7,000여 평, 특히 총독부 직영관은 모두 조선식으로 해서 구 궁전과의 조화를 꾀해 조선 분위기를 충분히 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한 행사 기간을 9월 12일부터 10월 31일까지 50일간으로 하여, 가을 하늘이 청량한 반도에서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을 골라 내외 관객의 관람에 편의를 주었다. 이어서 10월 1일 시정 20주년 기념일에서 일찍이 1915년(大正 4) 시정 5년 기념공진회에 참석한 간인노미야 전하가 입석한 가운데 성대한 조선박람회 개최식을 거행하였고, 내각 총리대신 하마구치 오사치는 축사를 보냈다.
진열품은 농업수리개간간척부터 경무사법육해군 등에 이르리까지 22부 273개류로 구별했다. 조선 외의 출품 또한 매우 많아서 특설관 혹은 참고관을 세워서 진열했다. 여기에는 내지 훗카이도 대만 사할린의 여러 고나청 또는 민간에서의 출품은 물론이고 만몽 남양 및 기타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외국 출품 또한 상당히 많았다. 출품 총 인원은 2만 1,790명, 출품 수 총계는 9만 4,299점으로 이 중 조선 내 출품에 한해 심사를 거쳐 각기 등급을 매겨 상패와 상장을 수여했다.
심사 결과 조선에서의 산업 개발에 효험이 있다고 인정되는 출품에 대해서는 출품자에게 장려장을 특히 공로가 있다고 생각되는 자에게는 공로장을 수여하고 10월 11일 그 수여식을 거행하였다. 심사를 거침 출품 인원은 1만 4,592명이었고 출품 수는 모두 1만 9,023점으로 이 가운데 상패 또는 상장을 받은 자가 3,298명, 장려장이 51명, 공로장이 208명으로도합 6,008명에 달했다. 또한 개최 기간 중에 유료 입장한 자는 무려 98만 6,000여 명에 달했고, 우대권 및 기타 무료 입장자를 합산하면 넉넉잡아 백 수십만 명에 달하였다. 관람자에게는 경성협찬회와 제휴해서 선박 및 차량 운임을 할인하고, 여관 설비, 숙박료 할인 등 여러 종류의 편의를 극력 도모했다. 또한 경성협찬회는 시내의 장식, 회장 내의 전등, 동력 수도에 관한 시설 외에 접대관 연예관 야외국 어린이나라 무료휴게소 안내소 매점 음식점 등 여러 시설을 갖추었다. 각 도 협찬회는 특설관을 건설하여 물산의 진열 및 판매를 하거나 관람단체의 조직 접대 등에 힘섰다.
이번 기회에 일본 적십자사 조선본부 제 4회초오히, 제국재향군인회 제 2회 전선대회가 개최되었고 간인노미야 전하가 이들 모임에 모두 ㅎ참석해주셨다. 또한 그 외에 여러 유익한 대회 등이 열려 간접적으로 여러 다양한 방면에서 큰 효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