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물산공진회 단체관람객

han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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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은 고진회에 참여하는 쪽도 식민지의 '진보'를 시각화하는 능력을 더 키울 수 있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주최 측은 지역협찬회를 활용했다. 조선인 엘리트, 특히 농촌의 지역 유지들을 격려하여 여행 가이드가 안내하는 공진회 단체 관광에 참여시킨 것이다. 일반적으로 총독부 관료들은 한반도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업인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수적으로 훨씬 작은 도시인구와는 대조적으로, 이들이 공진회에 출품된 산업 생산품들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괄목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공진회의 전체 행사 기간 51일 중 48일까지의 이벤트에 참여한 방문객 79만 면 중 7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이 경성 외부에 거주했던 것이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단체 관람객의 거의 대부분은 지역 유지들로, 남성 토지 소유자이면서 동시에 지역 지도자 역할도 맡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들의 경성 방문을 추진했는데, 지역협찬회의 명예회원 자격이라는 확실한 특권 신분 상징을 인센티브로 활용했다. 경성 방문을 지역 유지를 문화적 중재자로 만들어내는 단기 훈련 과정의 일부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최신 농업기술에 관한 전시를 통해, 지역 유지들이 진보의 산물들을 직접 도구로 화용하여 농업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늘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사실 단체 방문은 공진회 전체 방문객의 7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총독부의 통제하에 있었던 한글 신문인 매일신보에 실린 대부분의 공진회 관련 기사는 대부분 이 단체 방문에 근거하여 작성되었다. [1]

그런데 이렇게 옛 궁궐터에 여성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여성들에게 양처라는 전통적 역할을 장려하려는 총독부의 노력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조선물산공진회가 개최되고 있던 같은 기간에 가정박람회가 경성일보와 매일신보 사옥에서 열렸다. 가정교육, 위생 개혁, 저축 캠페인 등을 통해 가사 노동에 대한 여성들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목표였다. 예를 들어 경성협찬회의 조선인 부회장인 조중응은 조선 여성들

  1. 헨리토드, 20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