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 조선 제14대 선조의 계비.본관은 연안(延安).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김제남(金悌男)과 광산부부인 노씨의 딸이다. 1602년 17살에 51세 선조의 계비가 되었고, 몇년 후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광해군 즉위 후 영창대군은 폐서인된 후 살해되었고 외조부 김제남도 사사 됐다. 이어서 인목왕후도 폐비가 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 이 폐모행위는 인조반정의 빌미가 되었고 반정 후 인목왕후는 복호되어 대왕대비가 되었다. 인조를 인정한 대비 위치로 가끔 국정에 관여하여 한글 교지를 내리기도 하였다. 금강산유점사(楡岾寺)에 친필로 쓴『보문경(普門經)』의 일부가 전하고, 인목왕후필적(仁穆王后筆跡) 첩(帖)이 남아 있다.
시호는 소성정의명렬광숙장정인목왕후(昭聖貞懿明烈光淑莊定仁穆王后)이고, 능호는 목릉(穆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목왕후 [仁穆王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