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의장의 정의
왕실에서는 중요한 의례를 거행하거나 왕을 비롯한 왕실 성원이 행차를 할 때 행사의 격을 높이고 주인공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하여 다양한 상징물을 사용하였는데 이를 의장 儀仗 이라고 한다. 의장에서 의 儀 는 위의 威儀 를, 장 仗 은 창이나 칼 같은 병장기 兵仗器 를 뜻하는 것이다. 명칭에서도 나타나듯이 의장의 유래는 고대의 병장기와 맥이 닿아있으며 실제로도 병장기를 포함한 여러 의장물들로 채워졌다. 의장은 상서로운 동물, 천문, 자연현상, 길상적인 문자가 그려진 깃발류, 햇빛을 피하고 먼지를 가리는 용도에서 유래한 산선 扇 류, 권위를 나타내거나 신호용으로 내세워 걸던 기치 旗幟 류, 일상에 쓰이던 기물 器物 류 등으로 다양하게 갖추었다.[1]
의장을 나타내는 용어
의장을 나타내는 용어로 노부 鹵簿, 도가 導駕 등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용어의 연원이나 사전적 정의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동일한 내용에 대해 의장, 노부, 도가 등의 용어가 두루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들 용어가 큰 의미 구별 없이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다 친숙한 용어인 ‘의장’으로 통일하여 설명하였다.[2]
조선 초기 의장제도
우리나라의 의장 제도는 중국에서 유래하여 일찍부터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려부터이다. 중국 송 宋, 960-1279 의 사신 서긍 徐兢,1091-1153 이 1123년 고려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고려도경 高麗圖經 』에서도 의장에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려사 高麗史 』에서도 체계적으로 분류된 의장을 기록하고 있다. 고려의 의장 제도는 황제의 격에 걸맞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의 의장 제도를 바탕으로 관련 제도가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명 明, 1368-1644 과의 외교 관계 성립 이후 제후국의 반열에 해당하는 것들을 채택하 였다. 조선 전기의 의장 제도는 『세종실록 世宗實錄 』 「오례 五禮 」, 『국조오례서례 國朝五禮序例 』 (1474)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의 의장 제도는 고려에 비해서 규모, 용도, 신분에 따라 보다 다양하게 나뉘어졌다. 의장물의 상징적 색상과 도안, 종류와 수량, 배열 위치 등을 일정한 규칙에 의해 구현함으로써 의례의 주체와 규모, 성격을 명확히 하였다. 주체의 신분이 높을수록 상징하는 의장의 규모가 크고 복잡하였으며 의례의 경중에 따라서도 그규모가 달라졌다. [3]
조선 후기 의장제도
조선 후기에는 『국조속오례의서례 國朝續五禮儀序例 』(1744), 『국조속오례의보서례 國朝續五禮儀
補序禮 』(1751), 『춘관통고 春官通考 』(1788) 등을 통해 의장 제도가 정비되고 세분화되었다.
이러한 전례서 외에 의장 배열만을 정리해 놓은 문헌들도 있는데, 18세기 말경의 『의장 반차도 儀仗班次圖 』가 대표적이다. 조선 후기 왕의 의장은 대가 大駕 의장 167건, 법가 法駕 의장 112건, 소가 小駕 의장 58건, 기우제 祈雨祭 의장 38건, 영정세 影幀細 의장 29건, 행용세 行用細 의장 30건의 규모로 구성되었다. 그 외에 왕비 王妃 의장은 55건, 왕세자 王世子 의장 35건, 왕세자빈 王世子嬪 의장 21건, 왕세손 王世孫 의장과 왕세손빈 王世孫嬪 의장 19건, 혜경궁 惠慶宮 의장 45건, 가순궁 嘉順宮 의장 3건 등으로 규정되었다. 조선 후기의 의장 제도에서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조선 전기까지 형명 形名(군에서 지휘, 통신용으로 사용하는 기물) 에 속했던 둑 [纛] 과 교룡기 交龍旗 가의장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둑과 교룡기는 왕의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의장물로 의장 행렬의 가장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4]
대한제국의 의장제도
대한제국은 1897년 성립 이후 황제국의 격에 맞는 의장 제도를 지향하였지만 체계를 갖춘 전례서로 정리되지는 못하였다. 1898년 『대한예전 大韓禮典 』이 편찬되기는 하였으나 조선의 의장과 크게 다르지 않고 단순히 색깔만 바꾸는 등의 임시 조치가 반영되었다.
대한제국의 의장은 각종 의궤 및 진연 進宴 관련 궁중 행사도 등을 통해 그 양상을 확인할수 있다. 황제국의 격에 맞춘 의장은 1901년(광무5) 7월 고종 高宗, 재위 1863-1907 의 탄생 50 주년 기념 진연 시에 전면적으로 갖추어졌다. 이 진연을 통해 황제의 대가의장과 법가의장, 황태자의장이 체계를 갖추었으며 이듬해에 이어진 두 번의 진연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의장이 구성되었다. 황실 여성의 의장은 국장 國葬 , 가례 嘉禮 , 책봉 冊封 등의 의례를 통해 정비 되었으며 황후, 황태자비, 황(귀)비를 중심으로 황실 여성에 맞는 의장이 새롭게 갖추어 졌다.
대한제국의 의장은 청 淸, 1636-1912 의 의장 제도를 중심으로 수용하면서 일부 명의 제도를 반영하여 정비되었다. 황제 대가의장은 133종 400건, 법가의장은 120종 230건, 황후의장은 54종 214건, 황태자의장은 56종 157건, 황태자비의장은 21종 33건, 황(귀)비의장은 21 종 31건으로 구성되었다. 황제국의 위상에 맞게 의장물의 종류와 수량이 크게 늘어났으며 조선에서 쓰였던 사각형의 깃발이 삼각형의 깃발로 바뀐 것이 가장 특징적인 변화이다.[5]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Additional Attrib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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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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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儀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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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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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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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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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개념 |
대가의장, 법가의장, 소가의장, 기우제의장, 영정세의장, 행용세의장, 왕비의장, 왕세자의장, 왕세자빈의장, 왕세손빈의장, 혜경궁의장, 가순궁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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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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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ti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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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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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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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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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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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통고(文獻通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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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집례(大明集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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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집례(大明集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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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직장(諸司職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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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관통고(春官通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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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자, |
『조선시대의 어가행렬』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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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훈, |
「조선전기 국왕 의장제도의 정비와 상징」,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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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
「조선시대 典禮書를 통해 본 御駕行列의 변화」, |
『한국학보』31-3,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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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 국립고궁박물관,『왕실문화도감, 의장』, 2018, 8~9쪽
- ↑ 국립고궁박물관,『왕실문화도감, 의장』, 2018, 8~9쪽
- ↑ 국립고궁박물관,『왕실문화도감, 의장』, 2018, 8~9쪽
- ↑ 국립고궁박물관,『왕실문화도감, 의장』, 2018, 8~9쪽
- ↑ 국립고궁박물관,『왕실문화도감, 의장』, 2018, 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