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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

궤(几)는 조선 시대의 국가 제례에서 다양하게 사용된, 제사 참석자들을 위한 제사용 자리.[1]
『세종실록오례』 ◎ 궤(几) : 《주례도(周禮圖)》에 이르기를, "궤연(几筵)을 맡았으니 5궤(几)의 좌궤(左几)·우궤(右几)·옥궤(玉几)·조궤(彫几)·칠궤(漆几)이다."고 하였으며, 《완씨도(阮氏圖)》에는 "궤(几)는 길이는 5척, 높이는 2척, 너비는 2척이고, 양쪽 끝은 적색(赤色)이며, 중앙은 검은 빛의 옻칠을 한다."하였는데, 마융(馬融:後漢 때의 유학자)은 말하기를, "길이가 3척인데, 양쪽 끝이 적색인 것과 중앙에 검은 빛의 옻칠을 한 뜻이 없다."고 하였으며,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왕은 궤(几)를 왼편과 오른편에 설치하니, 지존(至尊)한 신분을 우대한 것이요, 제후(諸侯)로부터 이하로는 혹은 왼편에 설치하기도 하고, 혹은 오른편에 설치하기도 하니, 일의 적당한 데 맞게 한 것이다. 제후가 제사를 지내는 자리[席]에는 궤(几)를 오른편에 설치하고, 국빈(國賓)을 연회(筵會)할 적엔 궤(几)를 왼편에 설치하니, 제사(祭祀)는 귀신에 관한 일[陰事]인 까닭으로 이를 오른편에 설치하고, 국빈(國賓)을 연회함은 인간에 관한 일[陽事]인 까닭으로 이를 왼편에 설치한다. 제후의 제사에는 조궤(彫几)를 설치한다."고 하였다. ◎ 几 : 《周禮圖》云: "司几筵,五 几左右玉彫漆。" 阮氏圖, 几長五尺, 高二尺, 廣二尺。 兩端赤, 中央黑漆。 馬融以爲: "長三尺, 無兩端赤中央黑漆之義。" 《禮書》云: "王設几於左右, 優至尊也。 諸侯而下, 或設之左, 或設之右, 適事之宜也。 諸侯祭祀席右几, 筵國賓左几, 則祭祀, 陰事也, 故右之; 筵國賓, 陽事也, 故左之。 諸侯祭祀彫几。"[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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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_궤-几 Object 물품 제기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世宗實錄五禮_几 ritual vessel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세종실록오례_궤-几


국사편찬위원회[1]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value
id 세종실록오례_궤-几
이칭/별칭 의궤(倚几), 연궤(燕几), 의존(倚尊), 연궤(燕几), 곡궤(曲几)
재질
색상
사용처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image
세종실록오례 세종실록오례:길례서례:제기도설:궤-几 hasPart
세종실록오례:길례서례:제기도설: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documents
세종실록오례:길례서례:제기도설:궤-几 주례도 references
세종실록오례:길례서례:제기도설:궤-几 예서 references
세종실록오례_궤-几 궤-几 type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도(周禮圖)』에 이르기를, “궤연(几筵)을 맡았으니 5궤(几)의 좌궤(左几) · 우궤(右几) · 옥궤(玉几) · 조궤(彫几) · 칠궤(漆几)이다.”고 하였으며, 『완씨도(阮氏圖)』에는 “궤(几)는 길이는 5尺, 높이는 2尺, 너비는 2尺이고, 양쪽 끝은 적색(赤色)이며, 중앙은 흑칠(黑漆)을 한다.”고 하였는데, 『마융(馬融)』에서 말하기를, “길이가 3尺인데, 양쪽 끝이 적색인 것과 중앙에 흑칠을 한 뜻이 없다.”고 하였으며,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왕은 궤(几)를 왼편과 오른편에 설치하니, 지존(至尊)한 신분을 우대한 것이요, 제후(諸侯)로부터 이하로는 혹은 왼편에 설치하기도 하고, 혹은 오른편에 설치하기도 하니, 일의 적당한 데 맞게 한 것이다. 제후가 제사를 지내는 자리[席]에는 궤(几)를 오른편에 설치하고, 국빈(國賓)을 연회(筵會)할 적엔 궤(几)를 왼편에 설치하니, 제사(祭祀)는 귀신에 관한 일[陰事]인 까닭으로 이를 오른편에 설치하고, 국빈(國賓)을 연회함은 인간에 관한 일[陽事]인 까닭으로 이를 왼편에 설치한다. 제후의 제사에는 조궤(彫几)를 설치한다.” 고 하였다. 周禮圖云司几筵五几左右玉彫漆阮氏圖几長五尺高二尺廣二尺兩端赤中央黑漆馬融以爲長三尺無兩端赤中央黑漆之義禮書云王設几於左右優至尊也諸侯而下或設之左或設之右適事之宜也諸侯祭祀席右几筵國賓左几則祭祀陰事也故右之筵國賓陽事也故左之諸侯祭祀彫几 [3]
국사편찬위원회[2]
세종실록오례 궤-几 documents <세종실록오례 권134, 흉례서례(凶禮序禮), 명기(明器)> 궤(几)흑칠(黑漆) 장(杖)흑칠(黑漆) 几黑漆 杖黑漆 [4]
한국전통지식포탈[3]
세종실록오례_궤-几 궤-几 type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도(周禮圖)』에 이르기를, “궤연(几筵)을 맡았으니 5궤(几)의 좌궤(左几) · 우궤(右几) · 옥궤(玉几) · 조궤(彫几) · 칠궤(漆几)이다.”고 하였으며, 『완씨도(阮氏圖)』에는 “궤(几)는 길이는 5尺, 높이는 2尺, 너비는 2尺이고, 양쪽 끝은 적색(赤色)이며, 중앙은 흑칠(黑漆)을 한다.”고 하였는데, 『마융(馬融)』에서 말하기를, “길이가 3尺인데, 양쪽 끝이 적색인 것과 중앙에 흑칠을 한 뜻이 없다.”고 하였으며,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왕은 궤(几)를 왼편과 오른편에 설치하니, 지존(至尊)한 신분을 우대한 것이요, 제후(諸侯)로부터 이하로는 혹은 왼편에 설치하기도 하고, 혹은 오른편에 설치하기도 하니, 일의 적당한 데 맞게 한 것이다. 제후가 제사를 지내는 자리[席]에는 궤(几)를 오른편에 설치하고, 국빈(國賓)을 연회(筵會)할 적엔 궤(几)를 왼편에 설치하니, 제사(祭祀)는 귀신에 관한 일[陰事]인 까닭으로 이를 오른편에 설치하고, 국빈(國賓)을 연회함은 인간에 관한 일[陽事]인 까닭으로 이를 왼편에 설치한다. 제후의 제사에는 조궤(彫几)를 설치한다.” 고 하였다. 周禮圖云司几筵五几左右玉彫漆阮氏圖几長五尺高二尺廣二尺兩端赤中央黑漆馬融以爲長三尺無兩端赤中央黑漆之義禮書云王設几於左右優至尊也諸侯而下或設之左或設之右適事之宜也諸侯祭祀席右几筵國賓左几則祭祀陰事也故右之筵國賓陽事也故左之諸侯祭祀彫几 [5]
국사편찬위원회[4]
세종실록오례_연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포연(蒲筵)은 길이가 7尺, 나비는 2尺 3寸이다.”고 하였으며,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제후(諸侯)는 제사(祭祀)에 자리가 2개이니, 왕골자리[莞席]는 좁은 끈으로 선을 두르고, 부들자리[蒲筵]는 무늬로 수(繡)를 놓는데, 펴는 것을 연(筵)이라 하고, 까는 것을 석(席)이라 한다. 연과 석의 제도는 짧아도 한 길[尋]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길어도 두 길[常]에 지나지 아니하고, 중간 것도 9尺에 지나지 아니한다. 『예기(禮器)』에 “상공(上公)은 대협(大祫)에 자리를 네 겹으로 펴고, 제후(諸侯)는 대협에 자리를 세 겹으로 펴고, 체제(禘祭)와 시제(時祭)에는 다 같이 자리를 두 겹으로 편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경(經)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글에는 모두 겹자리[重席]를 편다고 말하였으며, 모씨(毛氏)가 『시경(詩經)』을 해석하면서, 또한 겹자리를 편다고 하였으니, 제후의 조석(繅席)이 겹으로 되어 부들자리와 더불어 세 개가 되므로, 그 수효가 마침 예기(禮器)의 수효와 합하게 된다. 周禮云蒲筵長七尺廣二尺三寸禮書云諸侯祭祀席二莞席紛純蒲筵繢純鋪陳曰筵藉之曰席筵席之制短不過尋長不過常中者不過九尺禮器上公大祫席四重諸侯大祫三重禘與時祭同二重其言無所經見然書皆言敷重席毛氏釋詩亦曰設重席則諸侯繅席重焉與蒲筵而三其數適與禮器合矣 [6]
국사편찬위원회[5]
세종실록오례_의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의(扆)는 궤연(几筵)을 맡아 보(黼)를 설치하니, 도끼[斧] 모양을 한 것을 보(黼)라 한다. 그 수(繡)는 백흑(白黑)의 문채로 하고, 강백(絳帛)으로써 바탕을 삼는데, 제도는 병풍(屛風)과 같이 한다.”하고, 『시경(詩經)』의 공유장(公劉章)에, “이미 연(筵)에 오르고 이미 궤(几)에 의지하였다.”고 하였으며, 사우례(士虞禮)에 “좌식(佐食)이 아무 일 없이 지게문[戶]을 나와서 등에 의지하여 남면(南面)한다.”고 하였다. “대개 제후(諸侯)로부터 사(士)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지한 것이 있었다. 혹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혹은 그림을 그리지 않기도 하였으나, 상고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禮書云扆司几筵設黼依斧謂之黼其繡白黑文以絳帛爲質依制如屛風詩公劉曰旣登乃依士虞禮佐食無事出戶負依南面蓋諸侯至士皆有依焉或畫或否不可考也 [7]
국사편찬위원회[6]
국조오례의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당(唐)나라 원릉(元陵) 부묘의(祔廟儀)에 대축(大祝)이 신주(神主)를 받들어 곡궤(曲几) 뒤에 둔다 하였는데, 지금은 신주(神主)를 현칠 곡궤(玄漆曲几) 앞에 설치한다. 唐元陵祔廟儀大祝捧神主置曲几後今設神主於玄柒曲几前 [8]
한국전통지식포탈[7]
국조속오례의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국조속오례의서례 권2, 가례(嘉禮), 궤장도설(几杖圖說)> 궤(几)는 나무로 만들되, 주척(周尺)으로 길이 3尺 4寸, 높이 1尺 1寸 5分, 넓이 1尺 2寸 7分으로 하고 주칠[朱漆]을 하며, 양쪽 끝을 약간 높게, 한가운데를 약간 움푹하게 하되, 모가 없도록 한다. ○『후한서(後漢書)』에 옥궤(玉几)는 겨울이면 두터운 비단과 솜을 가한다 하였으나, 지금은 녹단(綠緞)을 사용하고 4방에 구멍을 뚫어 작은 띠로 묶도록 하고, 추(秋) · 동(冬)에만 이를 가하였다. 几以木爲之長三尺 周尺 四寸高一尺一寸五分廣一尺二寸七分柒以紅色兩端稍高中央稍凹無稜○後漢書玉几冬則加綈綿今用綠緞四周有小帶縶於孔秋冬加之 [9]
한국전통지식포탈[8]
국조상례보편_의궤(倚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발인(發引)> 의궤(倚几)[신주(神主)의 뒤에 설치하는 것이다]. 궤(几)에 쓰는 나무는 위와 동일하다. 길이는 2尺이고, 너비는 7寸이며, 두께는 2寸이다. 3足의 높이는 5寸이다. 흑진칠(黑眞漆)을 한다. 倚几[所以設於主後者]几用木同上長二尺廣七寸厚二寸三足高五寸黑眞漆 [10]
한국전통지식포탈[9]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의궤(倚几)는 왕실(王室)의 국장(國葬) 때 신주(神主)의 뒤에 설치하는 것이다.
국조상례보편_연궤(燕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복(復)> 연궤[발을 떠받드는 것이다]. 궤(几)는 양쪽 머리에 두 다리가 있는 것이다[세워서 사용한다]. 燕几[所以綴足者]几兩頭有兩脚者[竪而用之] [11]
한국전통지식포탈[10]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연궤(燕几)는 왕실(王室)의 국장(國葬) 때 의물로 시신의 발을 떠받들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춘관통고_의존(倚尊)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의존(倚几)[신주의 뒤에 설치하는 것이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르면 의궤(倚几)는 길이는 2尺 3寸, 너비 7寸, 두께 2寸이다. 3足의 높이는 5寸이다.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 따르면 궤(几)에 쓰는 나무는 위와 동일하다. 길이는 2尺이고, 너비는 7寸이며, 두께는 2寸이다. 3足의 높이는 5寸이다. 흑진칠(黑眞漆)을 한다. [出主時所以設主後者]原儀倚几長兩尺三寸廣七寸厚二寸三足高五寸補編几用木同上長兩尺廣七寸厚二寸三足高五寸黑眞漆 [12]
한국전통지식포탈[11]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 의궤(倚几)는 조선 왕실(王室)의 국장(國葬) 때 신주(神主)의 뒤에 설치하는 것이다.
춘관통고_연궤(燕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춘관통고 권85, 흉례(凶禮)> [발을 묶어두기 위한 것이다].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 따르면, “궤(几)[책상(案) 또한 평일에 왕이 사용하는 것이다]는 양쪽 머리에 두 다리가 있는 것이다[세워서 사용한다].” 라고 하였다. [所以綴足者]補編几[案也平日所御]兩頭有兩脚者[竪而用之] [13]
한국전통지식포탈[12]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 궤(几)는 조선 왕실(王室)에서 노인들에게 준 선물이다.
춘관통고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춘관통고 권49, 가례(嘉禮), 면복(冕服)> 궤(几)는 나무로 만들고, 길이는 3尺 4寸, 높이는 1尺 1寸 5分, 너비는 1尺 2寸 7分이다. 주척(周尺)을 사용한다. 홍색(紅色)으로 칠(漆)한다. 양쪽 끝을 약간 높게, 한가운데를 약간 움푹하게 하되, 모가 없도록 한다. 几以木爲之長三尺周尺四寸高一尺一寸五分廣一尺二寸七分漆以紅色兩端稍高中央稍凹無稜 [14]
한국전통지식포탈[13]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 궤(几)는 조선 왕실(王室)에서 노인들에게 준 선물이다.
대한예전_곡궤(曲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당(唐)나라 현종(玄宗) 부묘의(祔廟儀)에 대축(大祝)이 신주(神主)를 받들어 곡궤(曲几) 뒤에 둔다 하였는데, 지금은 신주(神主)를 검은 칠[玄漆]한 곡궤(曲几) 앞에 설치한다. 唐玄宗祔廟儀大祝捧神主置於曲几後今設神主於玄漆曲几前 [15]
한국전통지식포탈[14]
대한예전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대한예전 권5, 궤장도설(几杖圖說)> 궤(几)는 나무로 만드는데 길이 3尺[주척(周尺)을 사용한다] 4寸, 높이 1尺 1寸 5分, 너비 1尺 2寸 7分이다. 칠(漆)은 붉은 색이다. 두 끝이 조금 높고 중앙이 조금 오목하며 모서리가 없다. 『후한서(後漢書)』에 따르면, "옥궤(玉几)는 겨울에 제면(綈綿)을 덮는다. 지금은 초록빛 비단[緞]을 쓴다. 가을과 겨울에는 둘레에 작은 띠를 두르고 구멍에 매어단다."라고 하였다. 几以木爲之長三尺[周尺]四寸高一尺一寸五分廣一尺二寸七分漆以紅色兩端稍高中央稍凹無稜後漢書玉几冬則加綈綿今用綠緞四周有小帶繫於孔秋冬加之 [16]
한국전통지식포탈[15]
종묘의궤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당(唐)나라 때 『원릉 부묘의(元陵祔廟儀)』에서는 대축(大祝)이 신주(神主)를 받들어 곡궤(曲几)를 뒤에 둔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현칠(玄漆)을 한 곡궤(曲几) 앞에 신주를 진설한다. 唐元陵祔廟儀大祝捧神主置於曲几後今設神主於玄漆曲几前 [17]
한국전통지식포탈[16]

규장각한국학연구원[17]
선조의인왕후부묘도감의궤_의궤(倚几)[18]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선조의인왕후부묘도감의궤 권1, 1방의궤> 의궤(倚几)는 둘이다. 1坐는 안팎 3번을 전칠(全漆)한다. 길이는 2尺 3寸 4分, 다리까지 포함한 높이는 7寸 2分, 너비는 6寸 2分, 두께는 2寸이다. 백자판(柏子板)은 예기척(禮器尺)을 사용하여 만든다. 백저포(白苧布) 2尺 2寸으로 싼다. 탄말(炭末) 1升, 태말(太末) 1升, 어교(魚膠) 5錢, 전칠(全漆)에 2合이 들고, 매칠(每漆)에 5夕이 들었다. 대판(臺板)은 둘이다. 1坐는 3번 전칠(全漆)한다. 길이, 너비가 각각 1尺 3寸, 두께 3寸으로, 백자판(柏子板)을 사용한다. 싸는데 쓴 백저포(白苧布)는 2尺 2寸이다. 탄말(炭末) 1升, 태말(太末) 1升, 어교(魚膠) 5錢이다. 전칠(全漆) 2合과 매칠(每漆) 5夕이 들었다. 백자판(柏子板)은 즉 1立과 나란히 맞춘다[선공감(繕工監)의 것은 본디 무역에 쓰는 값을 주지 않는다]. 倚几二一坐內外三度全漆長二尺三寸四分通足高七寸二分闊六寸二分厚二寸用柏子板造禮器尺裹白苧布二尺二寸炭末一升太末一升魚膠五錢全漆二合每漆五夕臺板二一坐三度全漆長廣各一尺三寸厚三寸用柏子板裹白苧布二尺二寸炭末一升太末一升魚膠五錢全漆二合每漆五夕柏子板則倚竝一立[繕工監良中本無給價貿用] [19] 조선중기 1610년(광해군2) 선조(宣祖)와 의인왕후(懿仁王后)의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 의궤(倚几)는 신실(神室) 내 신탑(神榻) 위에 설치하여 신주(神主)의 받침대로 사용한다.
단경왕후복위부묘도감의궤_의궤(倚几)[20]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단경왕후복위부묘도감의궤 권1, 신주조성청의궤> 의궤(倚几)는 3坐이다. 여기에 든 것으로, 백자판(柏子板) 1立이다. 쌀(裹) 감으로, 진헌백저포(進獻白苧布) 6尺이다. 전칠(全漆) 1升, 매칠(每漆) 5合, 골회(骨灰) 4升, 탄회(炭灰) 5升, 가래나무[楸木] 반 條, 어교(魚膠) 2張, 설면자(雪綿子) 1兩, 구개백세저포(拘介白細苧布) 3尺, 백정포(白正布) 3尺이다. 倚几參坐所入柏子板壹立裹次進獻白苧布陸尺全漆壹升每漆伍合骨灰肆升炭灰伍升楸木半條魚膠貳張雪綿子壹兩拘介白細苧布參尺白正布參尺 [21] 조선후기 1739년(영조 15) 영조(英祖) 때 중종(中宗)의 폐비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愼氏)를 복위시켜 신주(神主)를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 의궤(倚几)는 신실(神室) 내 신탑(神榻) 위에 설치하여 신주(神主)의 받침대로 사용하였다.
영조국장도감의궤_궤-几[22]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영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상, 이방 복완질> 궤(几)는 1이다. 가래나무[楸木]를 써서 만든다. 길이는 8寸 5分, 너비는 4寸 4分, 높이는 4寸 7分으로서 주척(周尺)을 사용한다. 왜주홍(倭朱紅)을 칠하고 덮는 요[覆襦]는 초록운문단(草綠雲紋段)이고 안감[內拱]은 홍운문단(紅雲紋緞)이다. 외궤(外樻)는 흑진칠(黑眞漆)을 하고 안에는 홍초(紅綃)를 도배한다. 几一用楸木磨造長八寸七分廣四寸四分高四寸七分用周尺倭朱漆覆襦褥草綠雲紋緞內拱紅雲紋緞外樻黑眞漆內塗紅綃 [23] 조선후기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英祖)의 국장(國葬) 때, 궤(几)는 신주(神主)를 기대어 놓는 도구로 왕릉(王陵)에 부장(副葬)하였다.
영조국장도감의궤_궤장(几杖)[24]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영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상, 이방 품목질> 궤장(几杖)에 대해서는 당상관이 품달한 것과 관련하여 전교하기를 “장(杖)은 다만 외궤(外樻)를 만들고 궤(几)와 외궤(外樻)는 다 같이 새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장(杖)의 외궤(外樻) 및 궤(几)와 외궤(外樻)는 먼저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17일 명기(明器)와 악기(樂器)를 탑(榻) 앞에서 봉심(奉審)할 때에 궤(几)는 참작하여 견본대로 만드는데 대하여 전교가 내렸으므로 다시 마련하여 품달하니 전에 마련한 것을 효주(爻周)하고 이것으로 감결을 받아 취용하는 것은 당상관의 수결(上手)에 따른다[호조(戶曹), 공조(工曹), 선공감(繕工監), 군기시(軍器寺), 장흥고(長興庫)]. 장궤(杖樻) 1에 들인 것은 소나무판[松板] 반 반 立이다. 안을 바를[內塗] 감은 홍초(紅綃) 3尺 5寸, 백지(白紙) 4張, 어교(魚膠) 2兩, 두석(豆錫) 10兩, 마정(亇釘) 끈[纓子] 감은 홍진사(紅眞絲) 4分, 전칠(全漆) 4合, 매칠(每漆) 1合, 함석(含錫) 7兩, 삼보(三甫) 1月乃, 염소수염[羔鬚] 5錢, 목적(木賊) 3錢이다. 궤(几) 1에 들인 것은 얇은 자작나무판[椴板] 1立, 전칠 2合, 매칠1合, 어교 1兩, 왜주홍(倭朱紅) 2錢, 초록운문단(草綠雲紋緞) 길이 8寸 너비 4寸 5分짜리 1片, 홍운문단(紅雲紋緞) 길이 8寸 너비 4寸 5分짜리 1片, 씨 뺀 면화[去核綿花] 5兩, 설면자(雪綿子) 2兩, 초록진사(草綠眞絲) 4分, 두석(豆錫) 1兩이다. 궤궤(几樻) 1에 들인 것은 소나무판[松板] 반 立이다. 안을 바를 감은 홍초(紅綃) 3尺 5寸, 백지 4張, 어교 2兩, 두석 7兩이다. 마정 끈 감은 홍진사 4分이다. 전칠(全漆) 2合, 삼어매칠(三魚每漆) 1合 5夕, 아교가루[膠末] 모두 1升, 숯[炭] 모두 8升이다. 一几杖因堂上筵稟傳敎內杖則只外樻造成几與外樻竝新造可也事下敎敎是乎等以杖外樻及几與外樻先爲磨鍊矣今十七日明樂器榻前奉審時几則斟酌依樣造成事下敎敎是乎等以更爲磨鍊以稟爲去乎前磨鍊爻周以此捧甘取用何如堂上手決內依戶曹工曹繕工監軍器寺長興庫濟用監杖樻一所入松板半半立內塗紅綃三尺五寸白紙四張魚膠二兩豆錫十兩亇釘纓子紅眞絲四分全漆四合每漆一合含錫七兩三甫一月乃羔鬚五戔木賊三戔几一所入薄椴板一立全漆二合每漆一合魚膠一兩倭朱紅二戔草綠雲紋緞長八寸廣四寸五分一片紅雲紋緞長八寸廣四寸五分一片去核綿花五兩雪綿子二兩草綠眞絲四分豆錫一兩几樻一所入松板半立內塗紅綃三尺五寸白紙四張魚膠二兩豆錫七兩亇釘纓子紅眞絲四分全漆二合三魚每漆一合五夕合膠末一升合炭八升 [25] 조선후기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英祖)의 국장(國葬) 때, 궤장(几杖)은 악기(樂器)를 탑(榻) 앞에서 봉심(奉審)할 때 사용하였다.
영조국장도감의궤_의궤(倚几)[26]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영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하, 삼방 각양물건조작질> 의궤(倚几)는 1이다. 잣나무판[柏子板]을 쓰고 흑진칠(黑眞漆)을 한다. 길이는 2尺, 너비는 7寸, 두께는 2寸이다. 다리의 높이는 5寸이며, 예기척(禮器尺)을 쓴다. 여기에 든 것은 잣나무판 2立, 어교(魚膠) 3張, 콩가루[太末] 1升, 전칠(全漆) 3升, 매칠(每漆) 3升 8合이다. 솜좌자[襦座子] 2件은 진상한 자적주(紫的紬)를 쓰는데 하나는 궤 안[樻內]에 펴고 길이와 너비는 궤 안에 준한다. 하나는 대(臺) 위에 포개서 펴고 길이와 너비는 대에 준한다. 황화석(黃花席) 2紋의 선(縇)은 진상한 자적주를 쓰고 소(槊)는 설면자(雪綿子)를 넣는다. 뒤에 초주지(草注紙)를 바른다. 1紋은 대 위에 펴고 1紋은 대 아래에 편다. 여기에 들인 것은 황화석 2紋, 자적진사(紫的眞絲) 3分, 진상한 자적주는 실제 든 만큼, 설면자 5兩이다. 겹복건[裌覆巾] 1件은 진상한 백저포(白苧布)를 쓰고 길이와 너비는 포백척(布帛尺)으로 2尺 5寸이다. 일명 파(帕)라고 한다. 여기에 든 것은 진상한 백저포 20尺, 백저세사(白苧細絲) 3分이다. 궤 위를 덮는 수건[匱上覆巾] 1件은 전교(傳敎)와 관련하여 대궐에서 마련하고 새로 만들지 않는다. 여기에 든 것은 진상한 백저포 20尺, 백저세사 3分이다. 倚几一用柏子板黑眞漆長二尺廣七寸厚二寸三足高五寸用禮器尺所入柏子板二立魚膠三張太末一升全漆三升每漆三升八合襦座子二件用進獻紫的紬一則鋪樻內長廣準樻內一則重鋪臺上長廣準臺上黃花席二紋縇用進獻紫的紬槊用雪綿子後褙草注紙一紋鋪臺上一紋鋪臺下所入黃花席二紋紫的眞絲三分進獻紫的紬從實入雪綿子五兩裌覆巾一件用進獻白苧布長廣方二尺五寸用布帛尺一名帕所入進獻白苧布二十尺白苧細絲三分匱上覆巾一件因傳敎自內措備勿爲新造所入進獻白苧布二十尺白苧細絲三分 [27]
한국전통지식포탈[18]
조선후기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英祖)의 국장(國葬) 때, 의궤(倚几)는 신주(神主)의 뒤에 설치하여 신주를 기대어 놓는데 사용하였다.
정조국장도감의궤_의궤(倚几)[28]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3, 삼방 조작질> 의궤(倚几) 1件의 길이는 2尺, 너비는 7寸, 두께는 2寸이다. 세다리[三足]의 높이는 5寸이다. 예기척(禮器尺)을 쓴다. ○ 이상 내궤(內匱)와 외궤(外匱)의 대(帶)를 받치는 의궤는 모두 잣나무판(柏子板)을 쓰고 흑진칠(黑眞漆)을 한다. 산릉(山陵)에 도착해서 외궤와 대에 이금(泥金)으로 ‘상(上)’자와 ‘전(前)’ 자를 쓴다. 잣나무판 2立, 어교(魚膠) 3張, 콩가루[太末] 1升 5合, 전칠(全漆) 1升 4合, 매칠(每漆) 1升 3合, 이금 3分이다. 자릉침(紫綾枕) 1件에 들어가는 것으로 자릉(紫綾) 6寸, 씨 뺀 면화[去核] 1兩이다. 倚几一長二尺廣七寸厚二寸三足高五寸用禮器尺○以上內外匱臺倚几竝用柏子板黑眞漆而到山陵後外匱及臺以泥金書上字前字所入柏子板二立魚膠三張太末一升全漆一升四合每漆一升三合泥金三分紫綾枕一件所入紫綾六寸去核一兩 [29]
한국전통지식포탈[19]
조선후기 1800년(순조 즉위년) 정조(正祖)의 국장(國葬) 때, 의궤(倚几)는 신탑(神榻) 위에 설치하여 신주(神主)의 받침대로 사용하였다.
정조국장도감의궤_궤-几[30]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2, 이방 복완질> 궤(几)는 1坐이다. 피나무(椴木)로 만든다. 길이 8寸 7分, 너비 4寸 4分, 높이 4寸 7分이다. 전․후面은 각각 세로 7分 아래에 구멍 3개를 뚫는데, 둘레 지름은 2分이며 요[褥]의 끈[纓]을 꿰게 한다. 하변(下邊)을 4分쯤 둥글게 깎아 다리(足)를 만들고 또 그 위에 6分쯤 굴곡(屈曲)되게 하여 약간 깎고 왜주홍(倭朱紅)을 칠하고 안에는 흑진칠(黑眞漆)을 한다. 주척(周尺)을 사용한다. 부요(覆褥)에 솜을 넣는데[着絮], 겉은 녹운단(綠雲緞), 안은 홍운단(紅雲緞)이다. 길이와 너비는 궤와 같다. 홍단(紅緞)으로 끈(纓子) 6개를 만들어 좌․우에 각각 3관(貫)의 궤 구멍에 엮어서 궤(几) 안에 연결한다. 여기에 든 것으로 얇은 피나무판(椴板) 반반 立, 어교(魚膠) 5錢, 전칠(全漆) 8勺, 매칠(每漆) 3勺, 왜주홍(倭朱紅) 3錢, 숯[炭] 5升, 솜요[襦褥] 감은 초록운단(草綠雲緞) 길이 4寸, 너비 2寸 5分짜리 1片이다. 안감 및 끈(纓子) 6件 감은 홍운단(紅雲緞) 길이 4寸, 너비 4寸 5分짜리 1片, 씨 뺀 면화[去核綿花] 1兩, 홍진사(紅眞絲) 2分이다. 几一用椴木長八寸七分廣四寸四分高四寸七分前後面各從七分下鑿三孔圓徑二分俾貫褥纓下邊四分許圓削作足又其上六分許屈曲淺刻倭朱漆內黑眞漆用周尺覆褥着絮外拱綠雲緞內拱紅雲緞長廣同用紅緞作纓子六左右各綴三貫几孔結於几內所入薄椴板半半立魚膠五戔全漆八勺每漆三勺倭朱紅三戔炭五升襦褥次草綠雲緞長四寸廣二寸五分一片內供及纓子六次紅雲緞長四寸廣四寸五分一片去核綿花一兩紅眞絲二分 [31] 조선후기 1800년(순조 즉위년) 정조(正祖)의 국장(國葬) 때, 궤(几)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祭祀) 때 신주(神主)를 궤(几) 앞에 설치하여 사용하였다.
경종국장도감의궤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경종국장도감의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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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의빈예장도감의궤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단의빈예장도감의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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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국장도감의궤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숙종국장도감의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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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국장도감의궤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순조국장도감의궤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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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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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장도감의궤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AKS Encyves의 궁중기록화_물품_용작_정조국장도감의궤_규장각.jpg[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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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_궤-几 세종실록오례_궤-几 isRelatedTo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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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几 국립고궁박물관[33] currentLocation < 국립고궁박물관, 크기:길이 21.5cm, 유물도판출처:궁중유물전시관, 『종묘대제문물』, 2004, p.46.>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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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 세종실록오례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궤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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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한국전통지식포탈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pageNo=1&pageSize=&keyword=几&target=CRA
참고 조선왕조실록사전 궤연(几筵)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61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궤&ridx=0&tot=42
참고 위키 실록사전 궤연(几筵)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궤연(几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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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 세종실록오례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10a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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