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038 항목
Definition
보(簠)는 제사 때 도(稻)와 양(梁)을 담아 놓는 제기이다.[1]
세종실록오례 ◎ 보(簠) :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보(簠)는 구리를 사용하여 주조하였는데, 뚜껑까지 아울러 무게가 13근 2냥이요, 뚜껑까지 전체의 높이는 7촌, 깊이는 2촌, 속의 너비는 8촌 1푼이며, 중복(中腹)의 직경 길이는 1척 1푼이다."고 하였다. 【지금 상고하건대, 후면(後面)에서 무릇 무게를 말하는 것은 모두 구리를 사용한 것이다. 】 ◎ 簠 : 《釋奠儀》云: "簠用銅鑄造, 幷蓋重一十三斤二兩。 通蓋高七寸深二寸, 闊八寸一分, 腹徑長一尺一分。" 【今按, 後凡言重者, 皆用銅。】[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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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_보 | Object | 물품 | 제기 |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_보(簠) | 세종실록오례_보 | 世宗實錄五禮_簠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세종실록오례_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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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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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세종실록오례_보 |
이칭/별칭 | 보, 보개구(簠蓋具) |
재질 | 銅 |
색상 | |
사용처 |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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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_보 | 보 | type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보(簠)는 구리를 사용하여 주조하였는데, 뚜껑까지 합한 무게가 13斤 2兩, 뚜껑까지 전체의 높이는 7寸, 깊이는 2寸, 속의 너비는 8寸 1分, 배지름은 1尺 1分이다.”고 하였다.[지금 상고하건대, 무게를 말하는 것은 모두 구리를 사용한 것이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幷蓋重一十三斤二兩通蓋高七寸深二寸闊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今按後凡言重者皆用銅][3] | 국사편찬위원회[2] |
세종실록오례_궤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궤(簋)는 뚜껑까지 합하여 무게가 9斤, 뚜껑까지 전체의 높이는 6寸 7分, 깊이는 2寸 8分, 속의 너비는 5寸, 배지름은 7寸 9分, 너비는 5寸 6分이다.”고 하였다. 釋奠儀云簋幷蓋重九斤通蓋高六寸七分深二寸八分闊五寸腹徑長七寸九分闊五寸六分[4] | 국사편찬위원회[3] |
세종실록오례_멱 | 세종실록오례_보 | goesWith | 멱->포건[羃尊疏布巾]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삼례도(三禮圖)』에 베[布]의 幅은 2尺 2寸인데 이를 둥글게 하였으나, 지금은 베[布] 1幅으로써 네모를 취(取)하여 이를 만든다.”고 하였다.『주례(周禮)』에 이르기를, “팔준(八尊)은 천지(天地)에 헌작(獻酌)하는 까닭으로 굵은 포건(布巾)을 사용하니, 질박(質朴)을 숭상하기 때문이요, 육이(六彝)는 종묘(宗廟)에 관향(祼享)하는 까닭으로 포건(布巾)의 고운[精] 것을 사용한다. 그 구름을 그려서 문채를 놓는 것과 특생(特牲)의 멱[羃]은 모두 굵은 갈포(葛布)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釋奠儀云三禮圖布之幅二尺有二寸而圜之今以布一幅取方爲之周禮云八尊獻天地故用疏布巾尙質也六彝祼宗廟故用布巾之精者其畫雲爲文與特牲冪皆用綌 [5] | 국사편찬위원회[4] |
세종실록오례_비-匕 | 세종실록오례_보 | goesWith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비(匕)는 길이가 3尺이나 혹은 5尺이나 되니, 서직(黍稷)의 비가 있고, 생체(牲體)의 비가 있고, 소비(疏匕)가 있으니, 세 가지의 비는 가시나무로써 한다. 늠인(廩人) 의 개(槪) 는 서직(黍稷)의 비(匕)요, 옹인(雍人)의 개(槪)는 생체(牲體)의 비(匕)이니, 생체의 비는 도비(挑匕)이다. 그 제도는, 서직의 비는 도비보다 작고, 도비는 소비보다 작다. 유사(有司)가 제찬(祭饌)을 걷어치우면, 사마(司馬)가 두 손으로 도비의 자루를 잡고 청주(淸酒)를 떠내어 소비에 붓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세 번 한다. 도비로써 떠난 뒤에 소비에 붓는 것이 세 번이나 된다면, 소비가 큰 것이다.” 고 하였다. 禮書云匕長三尺或五尺有黍稷之匕有牲體之匕有疏匕三匕以棘廩人之槪黍稷之匕也雍人之所槪牲體之匕也牲體之匕挑匕也其制則黍稷之匕小於挑匕桃匕小於疏有司徹司馬以二手執挑匕柄以挹渣사注于疏匕若是者三挹之以挑匕然後注于疏匕者三則疏匕大矣 [6] | 국사편찬위원회[5] |
국조오례의_보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國朝五禮序例』(奎185-v.1-2) 0001권, 044a-044a면>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보(簠)는 동(銅)을 써서 주조(鑄造)하는데, 뚜껑을 합친 무게가 13斤 2兩이요, 뚜껑까지의 높이는 7寸이다. 깊이는 2寸이요, 넓이는 8寸 1分이며, 배지름[腹徑]은 1尺 1分이다. [뒤에 무게를 말한 것은 모두 동(銅)의 등속이다.]” 했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幷盖重一十三斤二兩通盖高七寸深二寸濶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後凡言重者都銅屬][7] | 한국전통지식포탈[6] |
국조상례보편_보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발인(發引)> 보(簠)는 백토(白土)를 구워서 만든다. 입구의 길이는 2寸 7分이고 너비는 2寸이다. 배 부분의 길이는 3寸이고, 뚜껑[盖]을 포함한 높이는 3寸이다. 簠用白土燔造口長二寸七分濶二寸腹長三寸通盖高三寸[8] | 한국전통지식포탈[7] |
춘관통고_보[9]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春官通考』(奎12272) 권12 「吉禮·原儀諸器圖說」 010면>[10] | 규장각한국학연구원[8]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 보(簠)는 왕실(王室)의 국장(國葬) 때 부장하던 명기(明器)의 하나이다. |
춘관통고_보(흉례)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보(簠)는 백토(白土)를 구워서 만든다. 입지름은 2寸 7分이고 너비는 2寸이다. 배 부분의 길이는 3寸이고, 뚜껑[蓋]을 포함한 높이는 3寸이다. 簠用白土燔造口長二寸七分濶二寸腹長三寸通蓋高三寸[11] | 한국전통지식포탈[9] |
대한예전_보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보(簠)는 동(銅)을 써서 주조(鑄造)하는데, 뚜껑을 합친 무게가 13斤 2兩, 뚜껑까지의 높이는 7寸이다. 깊이는 2寸, 너비는 8寸 1分, 배지름은 1尺 1分이다. [뒤에 무게를 말한 것은 모두 동(銅)의 등속이다.]”라고 했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幷盖重一十三斤二兩通盖高七寸湥二寸闊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後凡言重者皆銅屬] [12] | 한국전통지식포탈[10] |
종묘의궤_보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석전의』에 이르기를, 보(簠)는 구리[銅]로 주조한다. 뚜껑까지 합한 무게는 23斤 2兩, 뚜껑까지 합한 높이는 7寸, 깊이는 2寸, 너비는 8寸 1分이고, 복판의 지름으로 긴 쪽은 1尺 1分이다. [뒤에 무게를 말한 것은 모두 구리 따위이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幷蓋重二十三斤二兩通蓋高七寸深二寸闊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後凡言重者皆銅屬][13] | 규장각한국학연구원[11] |
사직서의궤_보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보(簠)는 구리[銅]를 써서 주조(鑄造)하는데, 뚜껑을 합친 무게가 13斤 2兩, 뚜껑까지의 높이는 7寸이다. 깊이는 2寸, 너비는 8寸 1分, 배지름은 1尺 1分이다. [뒤에 무게를 말한 것은 모두 구리[銅]의 등속이다.]”라고 했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竝蓋重一十三斤二兩通蓋高七寸㴱二寸闊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後凡言重者皆銅屬][14] | 한국전통지식포탈[12] |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_보[15]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주철로 만든다.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보(簠)는 주철(鑄鐵)과 납(鑞)으로 주조하여 만든다. 뚜껑을 포함한 높이는 7寸, 깊이는 2寸, 넓이는 8寸 1分, 복판 둘레의 지름은 1尺 1分이다." 라고 하였다. 무게에 대해 말한다면 주조할 때 적정 수량에 꼭 맞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 그 중량을 기록하지 않는다. 사직(社稷)에는 매 신위마다 각각 2개씩 총 8개 놓고, 종묘(宗廟)에는 매 방마다 각각 4개씩, 6실, 7실, 8실에는 각각 2개씩 더하여 총 46개 놓으며, 영녕전(永寧殿)에는 매 방마다 각각 4개씩 총 24개 놓는다. 횡간(橫看)의 무게는 12斤 8兩이다. 鑄鐵釋奠儀云簠用鑄鐵和鑞鑄造通蓋高七寸深二寸闊八寸一分腹經長一尺一分若其重則鎔鑄之際未能盡合於數故今不錄重數社稷每位各二總八宗廟每室各四六七八室各加二總四十六永寧殿每室各四總二十四橫看重十二斤八兩 [16] | 한국전통지식포탈[13] |
경모궁의궤_보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보(簠)는 구리(銅)로 주조한다. 뚜껑까지 합한 무게는 13斤 2兩이다. 뚜껑과 발까지 합한 높이는 7寸, 깊이는 2寸, 너비는 8寸 1分, 배지름은 긴쪽이 1尺 1分이다. 뒤에 무게를 말한 것은 모두 구리로 만든 것들이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簠用銅鑄造竝蓋重一十三斤二兩通蓋高七寸深二寸闊八寸一分腹徑長一尺一分[後凡言重者皆銅屬] [17] | 한국전통지식포탈[14] |
순조국장도감의궤_보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한국전통지식포탈[15] | |
정조국장도감의궤_보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2, 이방 명기질> 보(簠) 1은 백토(白土)를 구워 만든다. 주둥이 길이는 2寸 7分, 넓이 2寸, 배[腹]의 길이 3寸, 덮개[蓋]를 포함한 높이는 3寸이다. 사옹원(司饔院)에서 마련한다. ○ 주척(周尺)을 사용한다. 簠一用白土燔造口長二寸七分闊二寸腹長三寸通蓋高三寸司饔院○用周尺[18] | AKS Encyves[16]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_보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AKS Encyves[17]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보[19] | 세종실록오례_보 | isRelatedTo | AKS Encyves[18]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궤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보 | isRelatedTo | AKS Encyves[19]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비-匕 | 세종실록오례_비-匕 | isRelatedTo | 중복 | AKS Encyves[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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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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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보 | http://sillok.history.go.kr/id/wda_20002008_003 | |
도설 | 국조오례의 | 보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보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506&category=A&sWord=簠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보 |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33 |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보(簠)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375 | |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보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보&ridx=3&tot=3505 |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보(簠)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보(簠) | |
참고 | AKS Encyves | 보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보(그릇) | |
도해 | 세종실록오례 | 보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6a03.jpg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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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 조선시대사학회, 2011. | ||
박수정, |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 조선시대사학회, 2012. | ||
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최순권, | 「조선시대 이준(彛尊)에 대한 고찰」, 『생활문물연구』14, | 국립민속박물관, 2004. | ||
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
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
김종임, |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 한국미술사학회, 2013. | ||
손명희, |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
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국립고궁박물관, |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 국립고궁박물관, 2014. | ||
궁중유물전시관, | 『종묘대제문물』,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Notes
- ↑ 이문주, "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보,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보,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보",『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궤,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궤",『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준을 덮는 굵은 포건,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비,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비",『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簠,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의서례』 1권, 길례 제기도설, 보,『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발인(發引), 보,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춘관통고",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춘관통고』 12권, 길례 원의제기도설, 簠,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 『춘관통고』 86권, 흉례, 보,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대한예전』 3권, 길례 제기도설, 보,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종묘의궤』 1권, 종묘제기도설, 보,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사직서의궤』 1권, 제기도설, 보,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 1권, 도감(都監), 궤,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경모궁의궤』 1권, 제기도설, 보,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2, 이방 명기질, 보,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한국 기록유산 Encyves』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