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궤연(几筵)은 조선 시대의 국가 제례에서 다양하게 사용된, 제사 참석자들을 위한 제사용 자리인 궤(几)와 연(筵)을 함께 지칭한다. 궤는 둥글고 작은 의자 모양을 하고 있다. 연은 부들로 엮어 만든 자리로서, ‘포연(蒲筵)’이라고도 칭한다.[1]
『세종실록오례』 ◎ 연(筵) :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포연(蒲筵:부들자리)은 길이가 7척이요, 나비는 2척 3촌이다."고 하였으며,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제후(諸侯)는 제사(祭祀)에 자리가 2개이니, 왕골자리[莞席]는 좁은 끈으로 선을 두르고, 부들자리[蒲筵]는 무늬로 수(繡)를 놓는데, 펴는 것을 연(筵)이라 하고, 까는 것을 석(席)이라 한다. 연과 석의 제도는 짧아도 한 길[尋](8척)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길어도 두 길[常](6척)에 지나지 아니하고, 중간 것도 9척에 지나지 아니한다. 《예기(禮器)》에 "상공(上公)은 대협(大祫)에 자리를 네 겹으로 펴고, 제후(諸侯)는 대협에 자리를 세 겹으로 펴고, 체제(禘祭)와 시제(時祭)에는 다같이 자리를 두 겹으로 편다."하였는데, 그 말이 경(經)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글에는 모두 겹자리[重席]를 편다고 말하였으며, 모씨(毛氏)가 《시경(詩經)》을 해석하면서, 또한 겹자리를 편다고 하였으니, 제후의 조석(繅席)이 겹으로 되어 부들자리와 더불어 세 개가 되므로, 그 수효가 마침 예기(禮器)의 수효와 합하게 된다. ◎ 筵 : 《周禮》云: "蒲筵長七尺, 廣二尺三寸。" 《禮書》云: "諸侯祭祀席二, 莞席紛純, 蒲筵繢純。 鋪陳曰筵, 藉之曰席。 筵席之制, 短不過尋, 長不過常, 中者不過九尺。" 《禮器》: "上公大祫, 席四重; 諸侯大祫, 三重; 禘與時祭同, 二重。" 其言無所經見, 然書皆言敷重席。 毛氏釋《詩》, 亦曰設重席, 則諸侯繅席重焉, 與蒲筵而三, 其數適與禮器合矣。[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Additional Attrib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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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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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궤연(几筵), 포연(蒲筵), 완연(莞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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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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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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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처 |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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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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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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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 |
연 |
documents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포연(蒲筵)은 길이가 7尺, 나비는 2尺 3寸이다.”고 하였으며,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제후(諸侯)는 제사(祭祀)에 자리가 2개이니, 왕골자리[莞席]는 좁은 끈으로 선을 두르고, 부들자리[蒲筵]는 무늬로 수(繡)를 놓는데, 펴는 것을 연(筵)이라 하고, 까는 것을 석(席)이라 한다. 연과 석의 제도는 짧아도 한 길[尋]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길어도 두 길[常]에 지나지 아니하고, 중간 것도 9尺에 지나지 아니한다. 『예기(禮器)』에 “상공(上公)은 대협(大祫)에 자리를 네 겹으로 펴고, 제후(諸侯)는 대협에 자리를 세 겹으로 펴고, 체제(禘祭)와 시제(時祭)에는 다 같이 자리를 두 겹으로 편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경(經)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글에는 모두 겹자리[重席]를 편다고 말하였으며, 모씨(毛氏)가 『시경(詩經)』을 해석하면서, 또한 겹자리를 편다고 하였으니, 제후의 조석(繅席)이 겹으로 되어 부들자리와 더불어 세 개가 되므로, 그 수효가 마침 예기(禮器)의 수효와 합하게 된다. 周禮云蒲筵長七尺廣二尺三寸禮書云諸侯祭祀席二莞席紛純蒲筵繢純鋪陳曰筵藉之曰席筵席之制短不過尋長不過常中者不過九尺禮器上公大祫席四重諸侯大祫三重禘與時祭同二重其言無所經見然書皆言敷重席毛氏釋詩亦曰設重席則諸侯繅席重焉與蒲筵而三其數適與禮器合矣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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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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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 |
연 |
documents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도(周禮圖)』에 말하기를, “포연(蒲筵)은 길이가 7尺이요, 너비가 2尺 3寸이다.” 했다. ○『예서(禮書)』에 말하기를, “제후(諸侯)의 제사석(祭祀席)은 2개가 있는데, 완석분순(莞席紛純)과 포연귀순(蒲筵繢純)이다. 펴놓는 것을 연(筵)이라 하고, 늘어놓는 것을 석(席)이라 한다. 연(筵)과 석(席)의 제도는 짧으며 8尺에 지나지 않고, 길어도 1丈 6尺에 지나지 않으며, 중간은 9尺에 지나지 않는다. 『예기(禮記)』에 보면, 상공(上公)의 대겹석(大袷席)은 네 겹이요, 제후(諸侯)의 대겹석은 세 겹이다. 체(禘)와 시제(時祭)에는 다 같이 두 겹이라 했는데, 그 말은 경(經)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서경(書經)』에 모두 겹자리를 편다고 했고, 모씨석시(毛氏釋詩)에도 겹자리를 깐다고 했으며, 제후(諸侯)의 소석(繅席)이 겹으로 포연(蒲筵)과 함께 그 수가 셋이라 했으니, 예기(禮器)와 맞는다.” 周禮圖云蒲筵長七尺廣二尺三寸○禮書云諸侯祭祀席二莞席紛純蒲筵繢純鋪陳曰筵籍之曰席筵席之制短不過尋長不過常中者不過九尺禮記上公大袷席四重諸侯大袷三重褅與時祭同二重其言無所經見然書皆言敷重席毛氏釋詩亦曰設重席則諸侯繅席重焉與蒲筵而三其數適與禮器合矣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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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지식포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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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상례보편 |
연 |
documents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항목 없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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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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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관통고 |
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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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항목 없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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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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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전 |
완연(莞筵) |
documents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춘관(周禮春官)』에 “사궤연(司几筵)은 대조근(大朝覲)이나 대향사(大享射) 및 제후에게 나라를 봉(封)하는 명을 내릴 때 왕의 자리에 보의(黼依)를 설치하고 보의 앞에 남향으로 왕골자리[莞筵] 분(紛)색으로 선을 두른 왕골자리를 깔고, 무늬를 그린 선을 두른 자리[繅席]를 얹고 그 위에 보문[黼]으로 선을 두른 자리를 얹고 좌우에 옥궤(玉几)를 놓는다. 제사를 지내되 선왕에게 잔과 자리를 마련하여 또한 이와 같이 한다.”라고 했다. 정씨(鄭氏)에 이르되 “연석(筵席)의 제도는 짧은 것은 평소 대로 하고, 긴 것은 보통 대로 하며, 중간 것은 9尺을 넘지 않게 한다. 가장자리의 선[純]의 제도는 윗 사람의 것은 보문[黼]을 넣은 것으로 두르고 아래 사람의 것은 검은 베[布]로 싼다.”고 했다. 진씨(陳氏)의 예서『禮書』에 “공언석(公彦釋)의 예기『禮器』에 이르되 천자가 협사하는 자리는 다섯 겹으로 하고 체제(禘祭)에는 네 겹으로 시제(時祭)에는 세 겹으로 한다.”라고 했다. 그 말은 경(經)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서경(書經)』에 모두 겹자리를 편다고 했고, 모씨석시(毛氏釋詩)에도 겹자리를 깐다고 했으며 즉 왕의 차석소석(次席繅席)은 다 겹으로 하고 완연(莞筵)도 그렇게 한다. 모두가 함께 같으니 예기『禮器』와 맞는다. 周禮春官司几筵云凡大朝覲大饗射凡封國命諸侯王位設黼依依前南鄕設莞筵紛純加繅席畫純加次席黼純左右玉几祀先王酢席亦如之鄭氏曰筵席之制短不過尋長不過常中者不過九 尺純緣之制上不過黼下不過緇布陳氏禮書曰公彦釋禮器謂天子大祫席五重禘祭四重時祭三重其言無所經見然書皆言數重席毛氏釋詩亦曰設重席則王之次席繅席皆重與莞筵而五共適與禮器合矣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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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지식포탈[4] 대한제국시대에 황실의 제사 때 종묘 바닥에 돗자리[席]를 겹으로 깔아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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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궤 |
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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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항목 없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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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의궤[9] |
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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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항목 없음.[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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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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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도감의궤[11] |
연 |
documents |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항목 없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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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도감의궤』는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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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모궁의궤 |
연 |
documents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항목 없음. [13] 한국전통지식포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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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
사직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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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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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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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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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
예기(禮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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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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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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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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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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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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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
조선시대사학회,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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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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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권, |
「조선시대 이준(彛尊)에 대한 고찰」, 『생활문물연구』14, |
국립민속박물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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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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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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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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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임, |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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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명희, |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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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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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방언, |
『조선왕조 종묘와 제례』, |
문화재청,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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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
국립고궁박물관,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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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유물전시관, |
『종묘대제문물』,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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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 박봉주, "궤연(几筵)", 『조선왕조실록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연,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연,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연",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筵,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의서례』 1권, 길례 제기도설, 연,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국조상례보편/연,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춘관통고』 86권, 흉례(凶禮), 춘관통고+연,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대한예전』 3권, 길례 제기도설, 완연,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종묘의궤』 1권, 종묘제기도설, 종묘의궤/종묘제기도설,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사직서의궤",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사직서의궤』 1권, 제기도설, 연,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제기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제기도감의궤』 1권, 도감(都監), 연,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경모궁의궤』 1권, 제기도설, 연,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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