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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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우방에 대한 신의로 시작된 파병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보냈다.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4차례 국회동의를 거쳐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은 32만 명이다.

베트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서냉전으로 남북이 분단된 나라였다. 스탈린의 승인 아래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켰을 때 한국은 미국 등 16개국 연합군의 도움으로 침략을 물리쳤던 경험이 있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자 한국인들은 처지가 같은 월남에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 전선은 한국전선과도 직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월남 지원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강화하고, 한반도 전쟁억지력의 중추인 주한미군의 감축을 막을 수 있는 전략적인 방안이라고 믿었다.

미국과 월남 정부가 공식으로 한국의 파병을 요청해오자 한국정부는 국회동의를 얻어 1차로 이동외과병원요원 130명과 태권도 교관단 요원 10명을 보냈다. 뒤이어 2차파병 요청이 있었고, 한국은 국회동의를 얻어 후방지원과 건설 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2,000명 규모의 비전투부대를 파병했다

안보론에 따른 전투군 파병

한국군의 제2차 파병이 있었던 1965년부터 베트남 전황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에 따라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는 다시 한국에 1개 사단 규모의 전투부대 파병을 요청해왔다. 당시 미국은 본토의 예비 병력과 해외 주둔군의 일부를 베트남전에 투입하였기 때문에 주한 미군 2개 사단도 언제 월남으로 이동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전투부대의 파병이 거론되자 한국 내 야당과 지식인들이 거세게 반대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안보가 최우선”이라는 판단 아래 8월 13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수도사단과 제2해병여단 파병을 결정하였다.

한국군은 월남전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전투병력 부족으로 애로를 겪고 있던 미국정부는 월남의 작전환경에 한국군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한국군 전투 병력 증파를 요청하였다. 한국정부에서도 “5만 명 선 까지는 무리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1966년 3월 20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수도사단 제26연대와 제9사단의 파병을 결정하였다.

닉슨 독트린

1969년 1월 미국의 대통령에 취임한 닉슨은 ‘베트남 전쟁의 베트남화 정책’을 내 걸고 월남에서의 단계적인 철군계획을 발표했다. `자국의 방위는 자국이 맡아야 한다`는 이른바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을 발표한 것이다.

그 무렵 월남의 한국군의 병력은 47,860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은 1단계로 1972년까지 약 1만 명의 병력을 철수시켰다. 2개 보병사단을 주축으로 한 전투병력(37,000여 명)은 1973년 초 휴전이 될 때까지 계속 남아있었다. 월남의 한국군 병력규모는 1972년 후반기부터 미국의 지상군 규모를 능가하였다. 9년 동안의 참전에서 한국군은 5,099명이 전사하고, 11,232명이 부상했다. 참전 한국군 중 다수가 고엽제 피해로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

마음의 빚을 남긴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은 ‘자유우방에 대한 신의’라는 명분에서 시작되었지만, 한반도의 안보이익과도 직결된 것이었다. 당시 남북한의 무력균형은 북의 우세로 기울어져 있었다. 북한은 1968년부터 청와대 무장특공대 기습사건, 대규모 게릴라부대 후방침투(북평삼척무장공비사건), 미해군의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등 무력도발을 잇달아 벌이고 있어서 한국은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의 전쟁억지력이 절실할 때였다. 월남전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은 한국전쟁 이래 가장 위험했던 안보위기를 극복하고 자주국방태세를 위한 중화학공업을 성공적으로 이룩하여 무력균형에서 북한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월남전은 경제적으로도 한국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장병들의 급여 송금과 한국기업들의 현지 진출등으로 나라에 부족했던 외환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참전군인과 기업들의 해외경험은 그 후 중동건설시장 진출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월남 패망과 함께 끊겼던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1992년 수교로 재개되었다. 1993년 포 반 키엣 수상이 방한하였으며, 1996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베트남을 공식 방문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8월에 쩐득르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방한했을 때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 사과 하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도 베트남을 방문하였을 때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하였다.

수교 이후 한국과 베트남의 경제관계는 크게 발전하였다. 2015년 기준 베트남은 한국의 4번째 주요 수출국이 되었으며, 베트남에 세워진 삼성전자의 휴대폰 생산시설은 수만의 일자리를 만들고, 베트남의 국제수지를 흑자로 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베트남 사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송정남, 『베트남 사회와 문화 들여다보기』, Huebooks, 2016.
유인선,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 : 양국관계의 어제와 오늘』, 창비, 2012.
송정남, 『베트남 역사 읽기』,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0.


『베트남 사회와 문화 들여다보기』는 베트남 사회와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망라하여 정리한 책이다. 전쟁의 기억을 공유하면서도 한국과는 먼 나라로 인식되는 베트남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베트남 사회의 형성조건으로서 자연환경과 민족적 기원을 살피고, 이후 베트남의 역사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베트남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족구조와 공동체의 유형 및 조직 구조, 신앙과 풍속 등 다양한 내용들도 함께 살펴보았다. 베트남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룬 책과 함께 균형감 있는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 : 양국관계의 어제와 오늘』은 베트남 역사에서 오랜 동안 깊은 영향을 주었던 중국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자 한 책이다. 이 책은 베트남과 중국은 지배와 항쟁의 관계를 거듭하면서도 그 문화 전파를 통해 한자와 유교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일원이 되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나라 이래로 중국의 지배와 수탈, 그에 따른 저항의 관계 속에 놓여 있던 양국은 대략 송대를 기점으로 베트남의 독립왕조가 수립되면서 조공과 방교의 관계로 수정되며 발전해 왔다. 청나라의 세력이 약화된 개항기에는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직면하기도 했던 베트남은 중국의 공산화와 더불어 다시 중국과 협력관계에 놓이기도 하였다. 함께 공산주의의 노선을 걸으면서도 베트남은 중국과 전쟁을 반복하는 등 아직도 복잡한 교섭의 면면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는 대국화를 선언한 중국의 세력 확장 속에 다시 남사군도, 국경 문제와 같은 이슈로 대립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양국은 동시에 가장 긴밀한 경제 교류의 파트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층적인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베트남 역사 읽기』는 베트남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책이다. 한국 사회에는 다소 생소한 베트남의 역사에 전문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저자는 2천여년에 걸쳐 유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베트남이 매우 깊고 폭넓은 문화적 토양을 가지고 있는 문화민족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그 속에서 저자는 베트남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동안 중국과의 관계 속에 같은 문화적 동질성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임을 강조하였다. 말미에 첨부된 베트남 역사 연표와 왕조 세보 역시 베트남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베트남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박태균, 『베트남 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한겨레출판, 2015.
윤충로,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 : 잊힌 전쟁, 오래된 현재』, 푸른역사, 2015.
이규봉, 『미안해요! 베트남 :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가다』, 문, 2011.


『베트남 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은 베트남 전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접근과 이해를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흔히 ‘건국 이래 최초의 파병’이라는 식으로 영광의 기억처럼 이해하고자 하는 한국사회의 시각에 대해 저자는 베트남 전쟁의 기억과 이해가 일방적이며 왜곡된 것이라고 보고 그 이면과 실체가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우리가 파병한 이유가 과연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가 질문을 던지면서 그 실체가 냉전의 대립 속에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과 강박의 결과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동안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기억되는 것과 기억되지 않는 것이 존재함을 지적하고,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나머지 반쪽의 기억을 회복해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주요한 교훈을 반추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 : 잊힌 전쟁, 오래된 현재』는 베트남 전쟁의 실체와 다양한 면면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베트남 전쟁을 참전자의 삶의 맥락과 생애사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고 한국 사회가 왜 먼 베트남의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해 내었다. 그동안 반공주의를 통해 전쟁을 정당화해온 한국사회가 주목하지 않은 전쟁의 이면에는 근대화의 추구와 식민주의적 열망,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투영된 정체성과 자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베트남 전쟁은 과연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적극적으로 찾아낼 수 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진정한 반성이 없는 화해와 봉인된 기억의 틀에 남겨두고자 하는 관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한계를 깨고 전쟁의 고통을 함께 보듬어 안으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전적 모색이 시급하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미안해요! 베트남 :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가다』는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파견 속에 부끄러운 상처로 남은 민간인 학살의 실체와 그 내용을 규명하고자 한 책이다. 저자는 여행기와 같은 문체와 구성으로 파월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과 만행의 현장을 찾아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학살의 현장에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비춰진 한국군의 모습은 ‘남조선 용병’에 불과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부끄러움과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베트남 전쟁의 실체와 만행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결국 저자는 베트남에서 자행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제주 4‧3 사건과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만행과 맞닿아 있다고 보고, 한국의 역사에서 베트남 전쟁의 부끄러움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숙제라는 점도 아울러 강조하고 있다.


  •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윤대영 외 공저, 『1862~1945, 한국과 베트남의 조우 : 교류, 소통, 협력의 중층적 면모』, 이매진, 2013.
이한우 외 공저, 『베트남 한류를 보는 한국과 베트남의 시각』, 이매진, 2013.
남복현, 『(한국과 베트남 국제결혼을 통해 본) 다문화 가족의 이해』, 눈빛, 2003.


『1862~1945, 한국과 베트남의 조우 : 교류, 소통, 협력의 중층적 면모』는 근대 이후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 양상과 면면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베트남과의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된 개항기부터 양국은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맺어왔으며, 그 전통 속에 오늘까지 선린우호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두 나라는 유교 문화를 토대로 한 전통시대의 경험 속에, 식민 지배와 독립을 위한 투쟁, 냉전시대 이념대립 과정에서 내전의 아픔을 겪는 등 비슷한 역사적 경험들을 공유하기에 문화적 동질감을 느끼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한때는 베트남을 동경했던 한국이 이제는 베트남에 한류를 유행시키는 등 그 교류의 양상이 변모해가고 있지만, 그러한 성과 속에 협력은 더욱 깊어지고 있으며 이를 위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매우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해 줄 것이다.

『베트남 한류를 보는 한국과 베트남의 시각』은 최근 한류의 열풍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 베트남 사회에서 한류가 가지는 의미를 분석해보고 그 평가를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베트남에서의 한류가 양국의 교류와 이해에 매우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전제 속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이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베트남 내 한류가 가지고 오는 사회경제적 효과에서부터, 베트남의 시각에서 보는 한국 대중문화의 성격, 드라마를 통해 제공되는 한국의 이미지가 베트남 사회에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베트남에서 쉽게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유교 문화의 전통이라는 양국의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앞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해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 국제결혼을 통해 본) 다문화 가족의 이해』는 현재 결혼을 통해 우리 사회에 이미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베트남 이주 여성의 생활과 그에 따른 다문화 사회를 향한 이해의 목소리를 담아 정리한 책이다. 단일민족의 신화 속에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했던 한국사회가 직면한 다문화 현상의 실체를 이제 직시하여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 여성의 삶에 주목하였다. 그는 객관적인 통계와 수치를 근거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다문화의 실체와 그 현실을 소개하면서, 건강한 다문화사회 조성을 위해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베트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저자는 한국과 베트남에는 역사와 문화에 있어 많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고 보고 그러한 이해의 노력과 움직임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양한 국제결혼의 양상과 그 내용들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그것이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내용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그 장단점과 문제점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함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법적 보완문제에서부터 베트남 이주여성의 삶과 관련한 주요 쟁점과 과제들을 소개함으로써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