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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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이순신 일러스트

이순신, 전쟁에 대비하다

이순신(李舜臣, 1545∼1598)임진왜란의 영웅이다.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침탈당하다시피 했던 임진왜란정유재란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 명장이 바로 이순신이다.

이순신의 고향은 충청남도 아산이지만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그가 태어난 서울 건천동 집에서 자란 듯하다. 같은 마을에 살았던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순신이 어린 시절부터 큰 인물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고 『징비록(懲毖錄)』에 적었다.

이순신은 32세 되던 1576년 식년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훈련원 봉사(權知訓鍊院奉事)로 뒤늦게 관직에 나갔다.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47세가 되던 해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이순신은 곧 일본이 쳐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좌수영(左水營: 여수)을 근거지로 삼아 거북선을 만들고 군량 확보에 노력하는 등 전쟁에 대비하였다.

당시 조선의 전선(戰船)은 배 위에 갑판을 덮고 그 위에 누각 등을 세운 판옥선(板屋船)이 대부분이었다. 1층에서는 노를 젓고 2층에서는 전투를 하도록 만든 배였다. 거북선판옥선 위에 다시 철갑 덮개를 씌워 거북이 모양처럼 만든 배로, 등에는 칼과 송곳 등을 꽂아 적이 배에 올라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 용의 머리처럼 만든 앞부분에는 총통을 쏘기 위한 구멍을 내서 마치 용의 입에서 불을 뿜는 듯이 보였다. 임진왜란거북선들은 적의 배들 사이를 다니면서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적에게는 큰 피해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연이은 승전보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부산 동래가 이틀 만에 함락되었고 조선의 여러 장수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는 바람에 일본군은 조선 수군과 한번 싸우지도 않고 해상권을 손에 넣었다.

이에 이순신은 즉시 전선(戰船)을 정비하고 싸울 태세를 갖췄다. 옥포(玉浦) 앞바다에 적선 30여 척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은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왜군은 조선 수군이 해상으로부터 공격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육지에 올라가서 불을 지르며 약탈을 하고 있었다. 이순신의 수군이 공격해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배에 올라 도망하려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이순신의 수군은 왜선 26척을 부수고 많은 왜병을 물리쳤다. 이 싸움이 옥포대첩이다.

그 후 노량(露梁) 앞바다에서도 많은 왜군을 섬멸하였다. 이 싸움에 처음으로 출동한 거북선은 그 위력을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거북선을 앞세운 이순신의 수군은 당포(唐浦), 당항포, 안골포(安骨浦), 한산도 등의 해전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었다.

이순신은 몇 척의 판옥선으로 일본의 수군을 공격하면서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 뒤 학익진(鶴翼陣)을 치고 맹렬한 공격을 가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이 세계 전쟁 역사에 기록된 한산도대첩이다. 한산도대첩진주성대첩(晉州城大捷, 1592.10.5∼10), 행주대첩(幸州大捷, 1593.2.12)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이다. 이 대첩은 육지에서 연속된 패배로 사기가 떨어져 있던 조선군에 용기를 되찾게 해주었다.

1593년 남해안 일대의 적군을 완전히 소탕하고 한산도로 진을 옮긴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되었다. 이듬해 중국 명나라가 참전했고 명나라와 일본 간의 강화회담이 진행되면서 전쟁이 잠시 멎는 듯했다. 이때도 이순신은 뒷일에 대비하여 군사 훈련, 군비 확충, 피난민의 생업 보장 등에 힘썼다.

백의종군에서 명량, 노량까지

이순신 장군 동상(서울 종로구) /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1597년 왜군이 다시 쳐들어왔다. 명나라와 일본 사이의 강화 회담이 결렬된 것이다. 이 전쟁이 정유재란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왜군의 모략과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1540~1597)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이순신의 죄명은 조정을 기만하고 임금을 무시한 죄, 적을 토벌하지 않고 나라를 저버린 죄, 다른 사람의 공을 빼앗고 모함한 죄 등이었다. 이순신은 우의정 정탁(鄭琢, 1526~1605)의 적극적인 변호로 감옥에서는 풀려나왔지만 도원수 권율(權慄, 1537~1599)의 부대에서 사병으로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적의 유인 전술에 넘어가 거제 칠천량(漆川梁)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이에 선조는 죽이려고까지 했던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조선 수군에 남은 군사는 120여 명, 병선은 고작 열두 척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실망하지 않고 명량해전(鳴梁海戰)에 임했다. 좁은 회오리 물길인 울돌목의 암초 지형과 시간차에 따른 조류 방향을 활용한 전술로 133척의 적군과 대결하여 31척을 부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 싸움으로 조선의 수군은 다시 의욕을 찾게 되었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도 큰 승리를 이끌어내던 중 선두(船頭)에 서 있던 그는 적의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는 죽는 순간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삼가라”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 군사들은 통제사가 죽은 사실을 미처 모른 채 왜군을 대파하였다. 나중에 그의 죽음을 알게 된 사람들은 “죽은 순신이 산 왜군을 물리쳤다”라고 말했다. 이순신임진왜란 중에 쓴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사료로 꼽히고 있다. 또한 그가 남긴 시조들은 조선 중기 시조문학가로 꼽힐 만큼 뛰어난 작품성을 보이고 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임진왜란과 이순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박해일 외, 『이순신의 일기: 난중일기』, 시와진실, 2016.
조성도, 『이순신의 생애와 사상』, 명문당, 2014.
류성룡 지음, 오세진 외 옮김, 『징비록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 홍익출판사, 2015.
정두희 외,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휴머니스트, 2007.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사비평사, 1999.


『이순신의 일기: 난중일기』는 이순신의 ‘일상’과 ‘내적 갈등’, 당시 ‘사회상’을 탐구한다는 취지로 『이순신의 일기』라는 제목을 택했다. 420여 년 전 이순신이 진에서 쓴 친필 일기, 『이충무공전서』에 수록한 ‘난중일기’,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난중일기초』, 해방 이후 가장 많이 출판한 이은상의 국역본을 포함한 후대의 필사본과 활자본, 국역본을 재차 살펴보았다. 특히 『이충무공전서』에 수록한 ‘난중일기’를 활자화하는 과정에서 친필 원문이 어떻게 훼손 편집되었는가를 예시했다.

『이순신의 생애와 사상』은 이순신 장군의 일편단심과 빈틈없는 경륜, 지·인·용의 덕을 갖춘 세계 해전사의 영웅인 장군의 생애와 사상을 기술한 책이다. 이순신 장군의 역정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참모습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징비록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는 류성룡이 집필한 또 하나의 임진왜란 전란사로, 역사적 참극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통한의 기록이다. 류성룡은 전란 당시 영의정이자 전쟁 수행을 책임지는 도체찰사를 겸했기에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황과 대궐의 사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살필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일찍이 이순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정읍 현감이라는 미관말직에 있던 그를 전라 좌수사로 추천한 사람도 류성룡이었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7년여에 걸친 전란 동안 조선의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상황을 기록하고 일본의 만행을 성토하면서, 그러한 비극을 피할 수 없었던 조선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후대에 교훈을 주는 책이다. 단순히 원문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참고문헌과 사진자료, 지도, 도표 등을 망라함으로써 당시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은 임진왜란을 동아시아 세계의 국제적 관점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센터가 임진왜란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2006년 6월 경남 통영에서 '임진왜란: 조일전쟁에서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라는 주제로 4일간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의 성과를 정리하였다.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전쟁 자체의 규모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동아시아의 국제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결과적으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새로운 중심의 탄생을 예고하는 커다란 사건이었고, 이 책에서는 이런 틀을 바탕으로 전쟁사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다. 먼저 동아시아 삼국이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자국이 승리한 전쟁으로 미화시켜 온 기존의 연구 경향을 벗어나기 위해, 전쟁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져 가는 양상을 파헤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국가사에 갇혀 있는 전쟁의 내러티브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그리고 국가사의 범위를 넘어서 동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임진왜란을 살펴보고 있다.

『임진왜란과 한중관계』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명군의 한반도 참전이 남긴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적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펴 `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혜(再造之恩)`를 숭상하는 의식이 지닌 실상과 허상을 고찰하고, 명청교체 시기의 동북아시아국제질서 변동에 따른 조선의 대응을 살폈다.


  • 명량해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민웅, 『임진왜란 해전사』, 청어람미디어, 2004.
설민석, 『전쟁의 신, 이순신』, 휴먼큐브, 2014.


『임진왜란 해전사』는 옥포해전에서 노량해전까지, 신화와 전설에 가려졌던 이순신 함대의 실체와 승리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복원한 책이다. 1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뒤흔들었던 임진왜란을 승리로 장식한 이순신 함대의 눈부신 활약을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임진왜란 7년 동안의 모든 해전의 경과와 역사적 의의를 밝히며, 『선조실록』, 『난중일기』, 『임진장초』, 『징비록』 등 사료에서 읽어낸 살아있는 기록을 전한다. 또한 정확한 고증을 통해 영웅, 순국사관을 벗겨낸 충무공 이순신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신, 이순신』은 이순신의 주변인물을 통해 이순신의 일대기를 다각적이고 입체적으로 살펴 인간 이순신을 이해하는 데 한층 가까이 다가간 역사서이다. 이 책은 이순신 인생의 중요한 10가지 장면을 소설-역사 특강-심화 특강의 3단계로 나누어 구성하고 있다. 『난중일기』, 『이충무공전서』,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사료를 고증해 이순신 주변 인물의 관점에서 이순신을 이야기하는 소설 형식의 1단계, 저자의 역사적 내공을 풀어낸 역사 특강 2단계, 그리고 난해한 역사의 사실과 사건, 인물 및 관계를 자세히 설명한 심화 특강 3단계로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놓쳤거나 혹은 몰랐던 이순신의 새로운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