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중심 인물
김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중심 인물
김구(金九, 1876∼1949)는 일제강점기 독립 운동가이며 정치가로서 중국에 있던 임시 정부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호는 ‘백범’인데,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보통 사람이라는 범부의 ‘범(凡)’자를 따서 미천한 사람부터 평범한 사람까지 누구나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했고 17세에 조선 왕조 마지막 과거에 응시하였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청년 시절 동학교도가 되었던 김구는 갑오농민운동 때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활동하였다.
을미사변에 충격을 받은 21세의 김구는 1896년 안악 치하포에서 일본군 중위 쓰치다[土田壤亮]를 죽이고 체포되어 해주 감옥에 갇혔다. 1897년 사형이 확정되었지만 집행 직전 고종 황제의 특사로 집행이 중지되었다. 그러나 석방이 되지 않아 다음 해 봄에 탈옥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계몽 운동에 나서서 1907년 안악에 양산학교를 세우고 1909년에는 재령 보강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고 1927년 국무위원이 되었다. 1928년에는 이동녕 · 이시영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고, 1931년에는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일본인 수뇌들을 직접 처치하는 일에 앞장섰다. 1932년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를 주도하여 거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내 소원은 우리나라의 독립이요
김구는 자신의 저서 『백범일지』에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요’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요’ 할 것이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요’하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라고도 썼다. 독립에 대한 그의 간절한 염원과 강한 애국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1940년 3월 임시 정부 주석에 취임하고 같은 해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였다. 항일 무장 부대를 편성하고,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자 1941년 12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이름으로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전쟁 치를 태세를 갖추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학도병들을 광복군에 편입시키고, 시안[西安]과 푸양[阜陽]에 한국광복군 특별 훈련반을 설치하였다. 또 미 육군과 제휴하여 비밀 특수 공작 훈련을 실시하는 등, 한반도 수복을 위한 군사 훈련을 추진하던 중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다.
한민족 스스로 통일된 독립국을...
해방 전 임시 정부는 국외의 독립 운동 단체를 대표하지 못했고 그 이유로 연합국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김구를 비롯한 임시 정부 요인들은 해방 후 개인 자격으로 국내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한국은 극심한 혼란에 휩쓸렸다. 남북이 분단되었고 남한에서도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분열되어 서로 심하게 갈등했기 때문이다.
김구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로부터 신탁 통치 방침이 전해지자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는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하면서 이승만과 더불어 남한에서 정치적 중심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김구는 반공산주의만을 외친 것이 아니고 미군정에 대한 쿠데타도 두 차례나 계획했다. 그는 미국도, 소련도 아닌 한민족 스스로 통일된 독립국을 만들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47년 11월 유엔 총회에서 남북한 총선거가 결의되자 김구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또 “소련의 거부로 남한만의 선거가 될지라도 추후 그 방해가 제거되는 대로 북한이 참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의연히 총선거의 방식으로서 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 그 정부는 법적 이치로나 국제 관계로 보나 통일 정부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8년 2월 하순 유엔에서 남한만의 선거로 단독정부 수립이 결정되자 김구는 이를 반대했다.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던 김구에게 민족의 분단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김구는 김규식과 함께 남북 정치 지도자 회담을 제안하는 편지를 북한에 보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무런 답도 보내오지 않았다. 한 달도 더 지난 후 북한의 김일성이 남북한의 모든 정당과 사회 단체들이 평양에 모여 남북 협상을 하자고 제의해왔다.
북한은 남북 협상을 제의하기 전인 2월 8일에 조선인민군을 창설하였고 2월 10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의 초안을 발표했다. 겉으로는 통일 정부를 만들기 위해 회의하자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미 자기들만의 정부를 만든 셈이다. 김일성은 남한의 단독 정부가 민족 통일을 방해한다고 선전하기 위해 남북 협상을 이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와 김규식은 북한에 가기로 했고, 김구는 “……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라며 평양으로 향했다.
서울로 돌아온 김구와 김규식은 남한의 5‧10총선거를 거부하였다. 김구는 1948년 국회에서 치른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가 되었지만 낙선하였다. 김구는 “통일이 없는 독립은 진정한 독립이 아니다”라며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세워진 후에도 유엔 감시 아래서 남북한 총선거 실시할 것을 주장하던 김구는 1949년 6월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범인은 김구가 주석으로 있던 한독당 당원 안두희 소위였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김구의 생애와 독립운동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김삼웅, 『백범 김구 평전』, 시대의 창, 2014. |
• 조범래, 『김구의 생애와 독립운동』, 독립기념관, 1992. |
• 박도,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눈빛, 2013. |
• 김구, 『백범일지』, 돌베개, 2005. |
『백범 김구 평전』은 백범의 진면목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백범이라는 인간의 자연인, 혁명가, 정치인 또한 자연 교육자와 문화주의 신봉자로서의 면모가 드러나 보인다. 일반적으로 혁명가와 독립투사로만 백범을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몰랐던 교육자적 자질과 정신 및 이상이 돋보이는 백범을 만나게 될 것이다.
『김구의 생애와 독립운동』은 백범선생의 출생에서부터 파란 많았던 항일구국운동, 임정활동, 건국활동 중 노혁명가의 최후에 이르기까지를 서술하였다.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는 1949년 6월 26일 발생한 백범 김구 암살을 자세히 다루고, 사건 이후 그동안 계속되어 온 암살배후 진상규명 운동과 암살범 안두희에 대한 응징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저자는 김구 선생의 마지막 발자취를 더듬으며 암살자와 추적자들의 끈질긴 이야기, 그리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다녀온 이야기를 오롯이 담으면서 암살 배후의 거대한 실체를 희미하게 보여준다.
『백범일지』는 전문연구자의 원전비평에 기초한 정본으로 진솔하고 감동적인 기록을 담았다. 이 책은 친필 원본은 물론 등사본과 필사본, 여러 가지 출간본 등 여러 저본을 일일이 면밀하게 검토, 대조했다. 또한 사전류는 물론 고전, 규장각 자료 등의 고문서, 수많은 회고록, 일본, 중국 등 해외의 임정 관계 자료까지 두루 활용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원본의 미흡한 점과 착오 등을 수정, 보완했다. 27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이자, 자신의 전 생애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겨레의 큰 스승인 백범의 삶을 잘 드러내고 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이현희, 『대한민국 임시정부사 연구』, 혜안, 2001. |
• 김희곤, 『임시정부 시기의 대한민국 연구』, 지식산업사, 2015. |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1945)』, 한울, 2017. |
『대한민국 임시정부사 연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고난에 찬 26년간의 독립투쟁 역사를 조망하면서 당시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인물들의 사상과 활동을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다.
『임시정부 시기의 대한민국 연구』는 대한민국의 요람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시작과 끝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이다. 상하이, 광둥, 충칭 등으로 자리를 옮겨 가며 펼쳤던 임시정부의 활동을 시대별로 구분하여 서술하고, 그 의의를 밝힌다. 또한 임시정부의 터전을 마련했던 신규식과, 그 살림살이를 맡았던 안창호, 이동녕, 이시영, 그리고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생의 마지막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김구까지, 그 행적을 낱낱이 전한다.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1945』는 1919년 3·1 운동 전후 시기부터 1945년 광복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타국의 땅에서 목숨까지 희생하며 헌신했던 임시정부 요인들의 삶과 업적을 300여 점의 사진으로 소개한 책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싶고 누구나 알아야만 하는 역사가 이 사진집에 담겨 있다. 사진은 시간순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각 사진마다 명료한 설명이 함께 실려 있어, 어린 학생들에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학습할 수 있는 훌륭한 교재가 될 것이고, 성인들에게는 대한민국의 근원을 다시금 새기는 시간을 갖게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