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나라, 잊힌 연맹국가,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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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ghkwk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1월 17일 (수) 11:12 판 (지는 금관가야, 뜨는 대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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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나라, 잊힌 연맹국가, 가야

가야연맹체

가야연맹은 서기 1세기경부터 6세기까지 한반도의 남부, 즉 낙동강의 연안을 중심으로 형성된 연맹체를 지칭한다. 대략 6개 소국으로 구성된 연맹체라는 측면에서 6가야 연맹체로 설명된다. 이 지역에는 본래 변한의 12개 소국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변한의 소국들이 3세기경부터 가야연맹의 6개 소국을 중심으로 흡수되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의 건국과 관련하여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가락국기」를 통해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토착세력의 추대로 김수로가 왕으로 등극하면서 가야 연맹체가 시작되고 있으며, 이후 6개의 연맹체는 인도 아유타국의 왕비를 맞아들이며 더욱 번성하였다고 말한다. 허황옥으로 알려진 김수로의 왕비는 가야로 들어올 때 불상을 함께 가지고 왔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가지고 한반도 남부의 불교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바다를 통해 인도에서 직접 전파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평야와 철을 가진 금관가야

가야의 역사는 크게 전기 가야연맹과, 후기 가야연맹으로 나눌 수 있는데, 김수로왕 설화는 이중 전기 가야연맹에 해당한다. 전기의 가야연맹은 김해 지역을 근거로 한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김해는 낙동강과 주변의 평야가 널리 분포하고 있어 농경에 매우 유리한 지역이었다. 또한 일찍부터 철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어 금관가야는 철이 가져다주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변지역을 압도하며 강력한 정치력을 확보하게 된 집단으로 판단된다.

철은 당시 화폐로 쓰일 만큼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에는 가야의 철을 수입하여 썼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일찍부터 가야는 철을 매개로 주변국가인 중국과 일본과의 교역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을 알 수 있다.

낙동강 하류라는 유리한 입지 조건

금관가야가 자리 잡고 있는 김해가 낙동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바다를 활용한 해양교역뿐만 아니라 경상도 내륙지방과도 쉽게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되었다. 이렇듯 금관가야가 전기 가야연맹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륙과 해양을 망라한 대외 교역을 통한 경제력에 밑바탕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창원 다호리에서는 기원전 1세기에 사용된 붓이 발견된 만큼 낙동강 하류 지역은 단순한 경제적 교역뿐만 아니라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교류의 창구 역할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환경을 토대로 전기 가야는 가야연맹을 넘어 낙동강 동쪽의 신라까지도 압박하면서 위력을 떨치게 되었다.

지는 금관가야, 뜨는 대가야

하지만 전기 가야연맹은 대략 4세기 이후부터 고구려가 남진하자 급격하게 위축되었다. 백제가야가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고구려신라의 요청으로 낙동강 하류로 진출하여 이들 세력들을 격파하였다. 광개토대왕릉비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고구려는 보병과 기병 5만을 동원하여 백제가야, 그리고 왜 세력들을 격파하였다고 전한다. 이때 금관가야는 크게 타격을 받아 쇠약해지게 되었다.

급기야 가야연맹은 금관가야를 대신해 고령 지방에 위치한 대가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연맹체를 구성하였으니, 이때부터 후기 가야연맹이 시작된다. 대가야가 위치한 고령은 내륙지방에 위치했던 만큼 고구려의 남하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가야연맹은 낙동강 하류의 활발한 수운 교역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 내륙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세력 확장을 꾀하게 되었다.

가야의 흔적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이 남긴 「석리정전」 안에 대가야 시조설화가 전한다. 여기에서는 대가야의 시조가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와 형제 사이로 소개되고 있다. 따라서 후기 가야연맹을 주도했던 대가야는 전기 가야연맹을 계승해 가야 연맹체 전체를 주도한다는 계승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야연맹은 끝내 6세기 경 신라에 복속 당하였다. 금관가야는 532년에, 대가야는 562년에 각각 신라에 정복되면서 가야연맹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가야의 유민들은 신라의 백성으로 남아 활발히 활동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끌었던 김유신(金庾信, 595~673)가야 유민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통일신라시대 음악가 우륵(于勒, ?~?)과 문장가 강수(强首, ?~?) 역시 가야 출신이다. 또 가야로부터 전래된 가야금은 현재도 주요 국악기로 연주되며 전통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악기로 꼽히고 있다 .

관련항목

참고문헌

  • 가야의 건국 신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광수,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푸른역사, 2017.
박상란, 『신라와 가야의 건국신화』, 한국학술정보, 2005.
이종욱, 『건국신화 : 한국사의 1막1장』, 휴머니스트, 2004.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는 가야의 건국신화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허황옥 설화의 실체에 대해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그 내용을 분석하고자 한 책이다. 저자는 인도에서 역사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땄으며, 그 경험 속에서 인도쪽의 사료와 정보들을 토대로 가야사에서 수용된 인도 관련 설화들을 반박하고 있다. 특히 제1장에서는 허왕후 설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이것이 김유신계 가문을 위해 첨가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한편, 조선시대에 들어와 허왕후 관련 설화들이 다시 한번 확대 재생산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내고자 하였다.

『신라와 가야의 건국신화』는 가야의 건국신화가 체계화 되어가는 과정을 밝히면서 개별 신화들의 전승과 그 내용을 소개하였다. 이어 선주민들의 신화 전승과 유이민 집단의 신화가 어떻게 융합되고 체계화 되는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유이민 집단인 김수로 집단이 정착해 가야 연맹을 주도해가는 경험과 과정이 신화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설명하는데 참고가 될만하다.

『건국신화』는 한국에 전승되는 모든 건국 신화들을 소개하면서 그 분석을 시도하였다. 특히 다양한 신화 가운데에서도 건국 신화에 주목해 국가의 출현 단계에서 건국 신화로 상징화된 각 나라의 경험과 인식 체계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또 제1장에서는 신화를 역사의 범주로 끌어들여야할 이유와 당위 등을 설명함으로써 신화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 가야연맹의 구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주보돈, 『가야사 새로 읽기』, 주류성, 2017.
김태식, 『사국시대의 가야사 연구』, 서경문화사, 2014.
인제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가야제국의 왕권』, 신서원, 1997.


『가야사 새로 읽기』는 가야사 연구 전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가야에 대한 초기 연구가 왜곡으로 얼룩졌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국내외의 가야사 사료에 대한 현황을 제시하면서 성격의 특징까지도 분석해 내고 있다. 특히 가야의 연맹이 결성되는 과정과, 고구려의 남진에 큰 타격을 받아 연맹체에 변화가 생기는 지점에 대해 초점을 맞춰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주목된다.

『사국시대의 가야사 연구』는 가야의 위치를 삼국과 같은 반열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자신의 독창적인 이론으로 ‘사국시대론’을 제창하면서 기존 학계가 가야의 위상을 경시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기본 연맹체 구조에 대한 저자의 의견과 가야 연맹체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시선이 가야사에 대한 시야를 더 넓혀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야제국의 왕권』은 가야에 대한 국제적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우선 가야연맹체에 대한 개념과 이해의 방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한편, 연맹체 형성의 시기에 대한 분석도 함께 시도하고 있다. 동시에 가야 연맹체에서 왕권의 실체와 면면들을 소개함으로써, 연맹체로써 가야와 연맹체 단계에서의 왕의 위상 및 존재 양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가야의 불교와 문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정호완, 『가야의 언어와 문화』, 보고사, 2007.
전호태, 『가야의 불교와 고분벽화』, 울산대학교출판부, 2005.
남도영, 『한국불교학연구총서-가야불교 및 기타』, 불함문화사, 2004.


『가야의 언어와 문화』는 가야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가운데 언어에 초점을 맞춰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가야의 문화를 언어의 전파와 지리적 문화 교류의 결과라는 측면으로 접근하고 있는 저자는 가야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북방 문화의 흔적들을 제시하고 나아가 가야의 지명과 인명, 벼슬의 칭호 등을 분석하면서 그 언어를 재구성해 내고자 하였다.

『가야의 불교와 고분벽화』는 가야의 불교를 허황옥을 중심으로 접근하여 분석을 시도한 책이다. 가야의 불교가 삼국의 불교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면서, 허황옥 설화에서 가야 불교의 특징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전문 연구서보다 대중서의 성격으로 구성되어 있어 쉽고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돋보인다.

『한국불교학연구총서-가야불교 및 기타』는 한국불교에 대한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삼국시대 불교의 수용이 중국을 통해 수용되는 것과 달리 가야의 수용은 허황옥 설화와 같이 해양을 통한 남방불교의 직접적인 전파라는 견해에 대해 가야 불교 특징과 내용을 분석하여 그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