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조화시킨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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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조화시킨 화가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인 그림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서양화가로서 20세기 한국 미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구성주의 계열의 추상 미술을 한국에 들여온 초기 모더니스트이다.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이며 전통적인 한국의 미에 서구 모더니즘을 결합한 화가이다. 또한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한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함께 갖춘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호는 수화(樹話)이다.
김환기는 1933년 일본으로 유학 가서 대학 재학 시절인 1934년에 아방가르드미술연구소를 만들어 추상 미술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 귀국할 때까지 자유전(自由展)에 출품하고 아마기화랑(天城畫廊)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신미술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광복 후 1946년에서 1949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조직, 새로운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하였다. 1952년 홍익대학교로 옮긴 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의 심사 위원과 대한미술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맡기도 하였다.
1965년 브라질에서 열린 상파울루 비엔날레(São Paulo Biennale)의 커미셔너로 출국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국제 미술의 주류로 발전하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다른 활동으로 작품 활동을 소홀히 했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작품 창작에 집중해야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곧바로 미국으로 갔다. 그후 미국에 정착하여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추상에서 한국적 정서로
그의 작품 경향은 일본 유학 시기(1930년대~1940년대 초반), 해방 후부터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1945~1963), 미국 뉴욕에 있던 시기(1964~1974) 등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유학 중이던 제1기는 당시 일본에 소개되기 시작한 새로운 추상 미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때이다. 1937년 작품인 ‘향(響)’과 1938년 작품인 ‘론도’ 등이 현재 남아 있는데 미래파적인 요소와 구성주의적 색채를 찾아볼 수 있다.
해방 이후부터 파리를 다녀와 뉴욕으로 가기까지의 시기인 제2기에는 한국적 소재를 담은 작품을 주로 그렸다. 이 시기에는 달과 산, 구름과 학, 나목(裸木) 등을 통하여 한국적 풍류와 시적 정서를 표출하려 했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렀던 3년 동안 이런 주제들이 더욱 함축된 작품들을 만들었다. 항아리와 달로 대변되는 둥글둥글한 형태가 화면을 채우거나 극히 단순한 선으로 표현된 산과 나목, 산에 걸린 달로 압축된 ‘월광(月光)’ ‘산월(山月)’ 등은 이 시기의 대표 작품들이다.
미국 뉴욕으로 가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의 약 10년에 걸친 시기인 제3기에는 지금까지의 경향과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점과 선이 무수히 반복되어 찍혀진 점화를 그렸고, 이전까지 두껍게 발라 올리던 마티에르의 구축성 대신 수묵(水墨)과 같이 투명한 질감을 사용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1970년 제1회 한국일보 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뉴욕 시기 김환기의 점화는 색조의 미묘한 변조와 농담의 변화, 발묵 효과와 같은 번짐 효과 등을 통해 미국의 미술 세계와는 다른 동양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우주적 공간의 이미지를 담은 추상화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된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세로 236㎝, 가로 172㎝. 개인 소장)’는 김환기의 1970년대 점화의 대표작이다. 점화는 화면 전체에 점을 찍고 그 점 하나 하나를 여러 차례 둘러싸가는 동안 색이 중첩되고 번져나가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체 화면을 메꾸어 만든 그림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먹색에 가까운 짙은 푸른색의 작은 점들을 화면 전체에 찍어나간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은,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 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라고 이어지는 시인 김광섭(金珖燮)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김환기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1971년부터 1972년까지 가로 2m, 세로 3m 정도 크기의 대작 점화를 여러 점 그렸다. 김환기는 자신의 점화에 대해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일기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