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민간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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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7월 28일 (금) 01:43 판 (새 문서: {{기본정보 |제목= 민중과 함께 해온 민간신앙 |집필자=신현덕 |인물/기관/단체=단군, 처용 |장소/공간=마을, 북악산, 송악산, 감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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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민중과 함께 해온 민간신앙
집필자 신현덕
인물/기관/단체 단군, 처용
장소/공간 마을, 북악산, 송악산, 감악산, 삼각산
기록물 토정비결
개념용어 기우제, 산신제, 부적, 가신신앙, 마을신앙, 무속신앙, 동제



원고

민간신앙은 아직까지 용어조차 정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이는 체계적인 종교가 아니라, 혈연 조직이나 마을공동체 등에서 종교와 같은 개념으로 행해지는 의식을 두루뭉술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는 훌륭하게 종교로 체계화 되었고, 신도 또한 적지 않다. 이글에서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정의한 종교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민간에서 전승되는 여러 가지 신앙이라는 정의에 따른다. 또 “민간신앙의 가장 보편적인 의미는 민족적 특성이 강한 민속종교나 신앙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규정한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신화·의례·주술·제사·행사·마을신앙·가정신앙·세시풍속·통과의례(通過儀禮)·장제(葬祭)·점복·금기·풍수(風水)·무속(巫俗)·조상숭배(祖上崇拜)·동제(洞祭) 등과 비집단적 신앙, 신흥종교, 민간의료 등”을 민간신앙으로 연구했다. 이중 무속신앙은 전문적인 민간 신앙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하지만 민간신앙은 기존의 어떤 종교와 비교해도 그 연원이 결코 짧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한반도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이래 어떤 형태로든 민간신앙은 함께 공존했다. 한국의 민간신앙은 단군신화에서 비롯된다. 삼국유사에 환웅은 하늘을 상징하는 환인의 아들로 되어 있다. “환웅의 하강설화(下降說話)는 환웅으로 대표되는 하늘숭배사상의 문화집단과 곰으로 상징되는 지모신신앙(地母神信仰)의 문화집단이 결합하는 것을 나타낸다.”[1] 단군은 환웅의 아들로 초인적인 능력을 지녀 비·바람·구름을 마음대로 거느렸으며, 죽어서 아사달의 신이 되었다. 이처럼 단군은 하늘의 대리자였다. 여기에 근거하여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로 탄생했다.

단군 때에 이어 삼국과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에도 민간신앙은 유지됐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기우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기우제에 관한 기록이 1,450회가 넘는다. 자연 현상에 따라 비가 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가뭄이 심해지면 왕은 자신의 부덕으로 비가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왕은 목욕재계하고 직접 나서 비가 오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관리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효험이 있다는 산천을 찾아가 역시 기우제를 지냈다. 심한 경우는 모든 관료와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대대적으로 빌었다,

기우제는 흉흉한 민심을 달래는 의미도 있었으며,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통치를 위한 목적도 부정할 수 없었다. 초기에 종교가 하던 역할을 기우제가 담당케 했던 것이다. 기우제는 기상예보 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가뭄이 심하면, 동네 어른들이 주관하여 가끔 마을에서 지내기도 한다. 왕실 주도의 행사 중 산신제도 중요한 민간신앙이었다. 산신제는 서울의 북악산, 개성 송악산, 파주 감악산, 경기도 삼각산 등 4악산에서 치러졌다. 이와 함께 전국의 주요 산들과 모든 마을에서도 자체로 거행했다.

이밖에도 민간에서는 집안의 평화와 안녕을 비는 가신신앙, 범위를 넓힌 마을신앙, 전문 무속인이 등장하여 행하는 무속신앙이 있었다.

민간신앙이 20세기에는 사라져 가다가 21세기 다시 부활하는 경향이다. 신앙으로 보다는 민속행사와 놀이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토정비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동제를 지내는 마을이 늘었다. 점을 치고 귀신을 쫒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집 안에 뿌리며 악귀를 쫓는 등 민간신앙을 지키고 따르는 것은 옛 것에 대한 추억일 것이다. 장승과 솟대가 전국 곳곳에 다시 세워지고 있으며, 이를 축제로 즐기는 마을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장승은 나쁜 기운을 막는 힘을 가졌다고 믿어, 솟대는 마을의 액을 막으며 풍년·풍어 등을 기원하고, 풍수지리에 따라 배가 가는 모양을 한 마을의 안녕을 빌며, 마을에 경사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마을 어귀에 세웠었다.

불행이나 재해를 막아 준다고 믿는 신비한 힘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게 한다는 부적도 민간신앙이다. 사악한 것이나 액운을 물리침으로써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민간에서는 종이에 부적을 어느 장소에 붙이거나 몸에 지녔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처용부적은 신라 이전부터 부적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주석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및 관련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마을신앙의 사회사

관련자료

  • 왕조실록
  • 삼국유사

연구원 검토

검토의견
민간신앙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민간 층에 전승되는 자연적 신앙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왕실주도의 기우제, 산신제보다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민간 층의 생활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민간신앙의 형태, 사상, 역사, 다른 종교로의 수용 등 한국적 민간신앙이 가지는 특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밝힐 필요가 있다. 또한 관련 시각자료도 함께 제시한다는 글의 이해를 돕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 민간신앙의 종류가 많고 방대하여 짧은 지면에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간신앙을 가능한 한 많은 분야와 내용을 서술하려고 하기 보다는 특정 기준을 마련하여 몇 가지라도 제대로 설명을 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합니다. 원고 검토를 위해 찾아보니, 한국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무형문화 보유 국가 3위입니다. 무형문화유산 14개 중 민간신앙에 해당되는 것으로 강릉단오제,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이 있네요.

- 가정신앙, 마을신앙, 국가신앙 등으로 나누어 서술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가정신앙은 가신 또는 점, 굿으로, 마을신앙은 위의 강릉단오제 또는 영등굿으로, 국가신앙은 단군신 또는 국가적으로 시행하는 기우제로. 글을 쓸 때 하나의 기준으로 대표적인 민간신앙을 서술하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쉽게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원고에 쓰인 단군신화 관련 민간신앙은 대종교를 말하는 것인가요?
- 민간신앙이 20세기에는 사라져 가다가 21세기 다시 부활하는 경향이다. → 그 이유가 무엇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해주세요.

- 풍수지리에 따라 배가 가는 모양을 한 마을의 안녕을 빌며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해가 되도록 설명을 친절히 해주세요.